어원은 ‘축토구목(築土構木)’이라는 중국의 고사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원시시대의 모든 건설재료가 흙과 나무였기 때문에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며, 영어로는 ‘civil engineering’으로 시민을 위한 공학이라는 뜻이며, 근래에는 곳에 따라 ‘public works’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모든 학문이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토목공학은 사회발전과 시대변천에 매우 민감한 학문이다. 농경사회를 위한 수리사업이 토목공학의 효시라 하면, 중세의 봉건사회를 위한 교량·성곽의 축조, 근래에 와서는 대중교통망의 구성, 환경보전, 항만의 축조 등으로부터 우주선의 구조설계, 인공위성으로부터 얻은 영상자료의 이용 등 시대의 변천과 욕구에 따라 영역이 다양화되고 있다.
토목공학을 보다 전문적인 분야로 세분한다면 수리(水理)·수문학(水文學) 및 구조공학·토질역학·환경공학·교통공학·원격탐사 등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이의 응용 분야로서는 교량공학·댐공학·수로공학·항만공학·상하수도공학·토질기초공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나라 토목공학에 대한 교육은 1916년 설립된 경성공업전문학교에 토목학과를 설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 신라·고려시대의 토목공사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의 활발하였던 수리 및 기타 토목공사를 본다면 상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이를 체계적으로 전수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일제 하에서의 교육은 극히 제한된 범위였으므로, 광복이 될 때까지 30여 년 동안에 총 61명을 배출하였을 뿐이다.
광복 후에 경성제국대학의 토목공학과와 경성공업전문학교의 토목공학과가 모체가 되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가 처음 설치되었다.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로 정식 개편, 출범하여 토목공학의 교육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으며, 1950년 이전에는 서울의 한양공과대학(현 한양대학교)과 대구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에 토목공학과가 설치되었다.
1999년 현재 전국의 종합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토목 관련 학과의 수는 219개이며, 2년제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학과의 수는 56개에 이른다.
토목공학의 발전은 광복 이후 40여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뒤 이제 정착, 발전단계에 이르렀다. 1945년 일제로부터 광복이 되자 연구인원의 부족, 시설 및 분위기의 결여 등으로 인하여 연구가 시행되지 못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연구는 물론 교육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1951년 12월 대한토목학회가 창립되었고, 1953년에는 ≪대한토목학회지≫ 제1권 1호가 발간되어 학자들의 학문에 대한 불굴의 의욕을 과시하였다. 당시 학회지는 부산 피란시절에 출간된 것으로 내용이나 체재면에서 현재와는 비교할 수도 없으나, 창간호에 발표된 원태상(元泰常)의 <극대홍수량 공식에 관한 연구>는 당시의 관계학자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문에 대한 논평과 이에 대한 답변식의 논문들이 계속 발표됨으로써 초창기의 대한토목학회는 많은 학문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광복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10년 동안의 학문발전은 외국학문의 소개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주로 구조역학과 수리·수문학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다음 10년간(1956∼1965)에는 연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학 내에서 외국학문과 접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고,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실험실습실이 구비되면서 연구의 방향은 실험을 겸비한 기초연구와 외국학문에 대한 직접도입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외국유학이 시작되어 일부학자들이 학위취득 후 귀국하여 학문연구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는 특히 새로운 분야인 토질역학에 대한 학문적 체계가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중의 연구방향은 구조 및 응용역학 분야는 모멘트분배법과 극한강도설계법에 대한 연구, 수리·수문학 분야에서는 극대공수량 산정에 대한 연구와 실험에 의한 여수로 설계, 도수(跳水)에 대한 연구, 지반공학 분야에서는 연약지반에 대한 압밀시험, sanddrain공법 등에 대한 연구가 주종을 이루었다.
1966년부터 1975년까지의 10년 동안은 사회가 안정되면서 대학도 기틀이 잡히기 시작하였으며, 외국에서 수학한 학자들이 대거 귀국하여 외국학문을 직접 소개하거나 외국에서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은 학문연구의 성숙기라 볼 수 있고 내용이나 질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과거의 논문은 주로 구조역학이나 수리학에 국한되던 것이 이 기간에는 수문학·환경공학·교통공학·원격탐사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산업사회 발전으로 인하여 생긴 교통·공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하였다.
연구의 내용면에 있어서도 외국의 학문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매트릭스구조 해석법이 이때 도입되어 구조해석에 신기원을 이루었으며, 물리적 현상 구명을 위한 새로운 수문학 분야 연구, 전자계산기 사용에 의한 해석, 본격적인 수리모형실험의 실시, 토질과 콘크리트의 실험적 연구 등이 이루어졌으며, 외국학회 논문발표회에의 적극적인 참여 등이 이 기간에 특별히 이루어진 활동이다.
1976년부터는 학문의 도약기라 할 수 있다. 대학은 양적으로 매우 팽창하였으며 거의 모든 종합대학과 단과대학 내에 토목공학과가 설치되었으며, 한국과학기술원에 토목공학과가 설치되면서 처음으로 대학원만의 토목공학과가 탄생하였다.
이와 같은 수적인 팽창에서부터 문교부의 대학원 육성방안에 힘입어 각 대학의 연구종사 인원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또한, 정부에서는 각종 차관자금에 의하여 대학 실험시설의 확충에 주력하였으며, 특히 IBRD자금에 의한 교수 해외연구기회의 부여는 학문풍토를 크게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은 전자계산기의 응용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구조역학 분야에서 재료의 좌굴, 강구조(鋼構造) 및 콘크리트의 배선형성, 콘크리트구조물의 시간의존성 변형 등과 같이 각 분야에서 심도 깊은 연구가 수행되었다.
수리학 분야에서도 지역적 특성에 따른 한국해안의 연구가 시작되었고, 수문학 분야는 고급통계학의 응용으로 한국 강우―유출 자료의 통계적 특성을 찾는 spectral density 및 cross spectrum분석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수자원 시스템공학이 처음으로 도입되어 수자원개발 및 운영에 시스템방법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환경공학·교통공학·상하수도공학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각종 환경의 기준설정, 미생물에 의한 오염물질 분해, 고형폐기물에 수반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초적 연구도 병행되었다.
교통공학 분야는 새로운 TSM(Transportation System Management)기법을 도입하여 대도시의 교통수단 분석, 최적가로망의 구성 등의 현실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또한, 원격탐사에 의한 국토이용분석, 오염도의 변화, 수자원의 적절이용 등이 진행되었다. 위와 같은 학문활동은 주로 해당학회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1951년 12월에 발족한 대한토목학회는 1952년 5월에 학회지의 첫 호를 발간하여 매년 꾸준히 발전하여 현재 회지는 연 6회, 논문집은 연 4회 발간하는 장족의 발전을 보았으며, 연 1회 학술발표회에서는 60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또한, 분야별 학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학회도 설립되어 한국수자원학회를 비롯하여 환경공학회·측지학회·지반공학회·교통공학회·한국댐학회·상하수도공학회 등 많은 학회가 있다.
토목공학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든 분야를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실로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실질적으로 인류생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기본적인 공학기초연구를 비롯하여 자연개조와 보전에 따른 각종 구조물의 구축, 하천 및 수자원 개발, 환경보전, 대중교통수단의 개발 등 다방면에 걸친 공학으로서, 앞으로 사회가 발전됨으로써 요구되는 각종 사항들이 이 토목공학 내로 수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