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의 생원·진사 및 사학 유생들의 수학 과정은 『대학』 1개월,『중용』 2개월, 『논어』와 『맹자』 각 4개월, 『시경』·『서경』·『춘추』 각 6개월, 그리고『주역』과『예기』는 각 7개월로 독서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업 성적을 평가하기 위해 성균관 유생의 경우는 매달 초순에 예조 및 성균관의 당상관이 함께 모여 통(通 : 2分)·약(略 : 1分)·조(粗 : 半分)·불(不)로써 고열(考閱)하였다. 그리고 매 식년(式年) 여름 초에 분수(分數)를 통계해 우등 5인에게는 곧바로 문과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을 부여하였다.
또, 재생과 사학 유생의 경우도 매달 초순에 중학(中學)에서 예조낭청·성균관장관, 그리고 사학관원 가운데 1인이 함께 모여 유생을 모아 사서를 고강하고 우등 10인에게 곧바로 생원시·진사시에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을 주었다.
이 고강에서 계속 ‘불’을 받을 경우 성균관 유생은 학규에 따라 처벌되고 재생 및 사학의 유생은 도기(到記 : 출석부)에서 이름이 삭제되어 3개월 안에는 다시 이름을 등재할 수 없었다.
조선 후기에는 그 선발 인원수도 10인으로 늘리고 시험도 제술(製述)과 강서(講書)로 나누어 제술은 부(賦) 1편과 표·전(箋)·논 중 1편을 짓게 하여 선발하였다. 강서는 사서삼경을 배송(背誦)으로 선발하였다. 또, 그 선발 대상도 확대되어 대사성이 경향(京鄕) 유생을 제술과 강서로 11차에 걸쳐 시험을 보아 우등한 자는 곧바로 식년문과복시에 응시할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