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1월에 25기의 고분 중 7기를 발굴 조사한 횡혈식석실분이다. 구읍리구읍산의 거시고개 동쪽 경사면 밑에서 고개 옆 북쪽산 중턱 약 200m 구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여기에서부터 약 300m 떨어진 금파마을의 낮은 야산에도 분포되어 있다.
고분 배치는 무질서하나 한 장소에 7∼8기가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특히, 낮은 구릉의 정상부까지 조성되었고, 높은 산의 경우 해발 70m 이상에는 고분이 조성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조성방법은 안변 용성리 고분군과 함경남도 일대 및 남한 일대에 산재 분포되어 있는 신라고분들의 분포상태와 유사하다.
고분은 모두 연도를 갖추고 있다. 천장구조와 관대시설에 의해 3개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거시고개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고분은 서향이며 석실은 길이 275cm, 너비 225cm, 높이 190cm이다.
가장 높은 곳인 해발 70m에 분포되어 있는 고분은 동남향으로 관대가 침대식이고 반지하로 축조되었으며, 석실은 방형이고 굄식궁륭천장에 장경호 등이 출토되었다. 거시고개에 있는 고분으로부터 위쪽 30m 지점에 있는 고분은 동남향이고 관대가 온돌식·침대식으로 지상에 축조되었으며, 석실은 장방형에 납작천장을 하고 있다. 제7호분은 한 변의 길이가 240cm인 방형이며 높이는 230cm이다.
7기의 고분은 3가지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Ⅰ형식은 장방형석실에 평천장과 온돌식 관대를 가진 서향의 지상구축형이다. Ⅱ형식은 평천장에 장방형석실을 갖추고 침대식 관대를 구비한 동남향형이다. Ⅲ형식은 방형석실에 궁륭천장과 침대식 관대를 갖춘 반지하구축형이다.
무덤조성의 선후관계는 Ⅰ→Ⅱ→Ⅲ유형순으로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Ⅰ형식에 해당되는 유형은 안변군 용성리의 수혈고분에 비해 후기이고, Ⅱ형식에 해당되는 유형은 경주 충효동 고분보다 선행되는 형식으로 보인다. 유물은 유흑색 점선무늬의 작은 토기병파편과 회청색 꼭지달린 토기 1개, 회청색 소호(小壺) 1개 등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은 경주 충효동 고분보다 선행하며 신라 말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신라의 6∼7세기 석실고분이 강원도 통천지역까지 점차 북상했음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