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릉 17위의 왕과 왕비, 후비 등을 안장한 왕릉이다.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408년(태종 8) 태조의 건원릉(健元陵) 터로 쓰여지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 일대를 통해 족분(族墳)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王陵群)이다.
기록에 따르면, 태조가 죽은 뒤 태종의 명을 받아 서울 가까운 곳에서 길지(吉地)를 물색하다가 검교 참찬 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 김인귀(金仁貴)의 추천으로 하륜(河崙)이 양주검엄(楊州儉嚴)에 나아가 보고 능지로 택정하였다고 한다.
항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동구릉 상지전설(相地傳說)은 태조가 생전에 무학(無學)을 시켜 자기와 후손이 함께 묻힐 족분의 적지를 택정해서 얻은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학의 법술이 신통함을 빙자해 만든 전설에 불과하다. 오히려 9개의 능 하나 하나가 조성된 사정을 보면 일일이 여러 곳으로 길한 능지를 물색하다가 이곳에 귀착한 것이라 하겠다.
동구릉이라고 부른 것은 문조(文祖)의 능인 수릉(綏陵)이 아홉 번째로 조성되던 1855년(철종 6)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동오릉(東五陵) · 동칠릉(東七陵)이라고 부르던 사실이 실록에 전하고 있다.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 이론에 합당한 지세임은 감여가(堪輿家: 풍수지리를 공부한 사람)들이 여러 대를 걸쳐 9개의 능터를 찾아낸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태종 때 명나라 사신들이 건원릉을 둘러보고 그 산세의 묘함에 감탄해 “어떻게 이와 같은 천작지구(天作地區)가 있는가? 필시 인간이 만든 조산(造山)일 것이다.”라고 찬탄하였다 한다.
현재 59만여 평을 헤아리는 광대한 숲에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해 제5대 문종과 그 원비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현릉(顯陵), 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懿仁王后),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인 목릉(穆陵),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능인 숭릉(崇陵),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능인 휘릉(徽陵),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端懿王后)의 능인 혜릉(惠陵),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능인 원릉(元陵), 제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孝顯王后),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의 능인 경릉(景陵), 제23대 순조의 원자인 문조와 원비 신정익왕후(神貞翼王后)의 능인 수릉 등 9개의 능이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