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릉 ()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삼연릉
건립 시기
1843년|1849년|1904년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헌종|효현왕후|효정왕후
소재지
경기도 구리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내용 요약

경릉(景陵)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이다. 1843년에 목릉의 옛터에 효현왕후의 능침이 자리 잡고 1849년에 헌종이 서쪽에 쌍릉으로 능침을 조성하였다가, 1904년에 효정왕후의 능침이 건립되면서 총 3기의 봉릉이 하나의 언덕에 나란히 배치된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
건립경위

1843년 8월 25일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1843)가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9월 2일에 능호를 경릉으로 정하였다. 산릉(山陵: 국장(國葬)을 하기 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새 능)의 후보지로는 창릉(昌陵)의 좌강과 용마봉 아래 신촌, 남양주휘경원(南楊州徽慶園) 국내, 목릉(穆陵)의 옛터가 유력하였다.

세 번의 주1을 거쳐 목릉의 옛터로 결정하였다. 1630년에 능상의 주2이 무너지는 문제가 지속되어 목릉을 주3하고 남겨진 곳이다.

1849년 6월 6일에 헌종(憲宗, 1827~1849)이 창덕궁의 중희당(重熙堂)에서 승하하였다. 능호를 숙릉(肅陵)으로 정하였으나, 효현왕후의 경릉에 쌍릉으로 조성하게 되어 경릉으로 합하여 부르게 되었다.

능상의 석물은 쌍릉이 배치될 수 있도록 옮겨 세우고, 헌종의 능침을 두르는 난간석(欄干石)과 주4, 좌향석(座向石)만 새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1903년 11월 15일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1903)가 경운궁 수인당(壽仁堂)에서 승하하자, 3차의 간심을 거쳐 12월 2일에 경릉 좌변으로 결정하였다. 1904년 1월 29일에 국장을 행하고 2월 22일에 공역이 마무리되었다.

효현왕후의 능침이 조성될 때 세운 능상 석물을 헌종과 효정왕후가 합부(合祔)되면서 점차 영역을 넓혀 옮겨 배치하고 혼유석과 난간석만 새롭게 조성하였다. 이로써 경릉에 헌종과 두 왕후의 능침이 나란히 배치되어 삼연릉(三連陵)의 이례적인 모습이 되었다.

형태와 특징

경릉은 구리동구릉주5주6 사이에 동향으로 자리잡았다. 언덕은 3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되도록 좌우로 넓게 형성되었으며, 곡담도 좌우로 넓은 장방형이 되었다. 3개의 봉분은 모두 주7을 갖추지 않고 난간석으로 연결되었다.

능상의 위계는 상계와 하계로 2단으로 구분하고, 상계에는 혼유석과 주8을 배치하고, 하계에 장명등(長明燈: 무덤 앞이나 절 안에 돌로 만들어 세우는 등)을 중심에 놓고 좌우에 주9이 배치되었다.

1800년에 건릉에 세워진 문석인의 복식을 금관조복으로 조각하여 19세기에 특징을 형성하였지만, 경릉은 구리동구릉 내 먼저 만들어진 각 능의 문석인 복식에 따라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으로 조각하였다. 1757년에 정리된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규례를 따라 정자각은 5칸으로 건립하였다.

의의 및 평가

조선의 왕과 왕후의 능침이 하나의 언덕에 합부될 때, 서쪽에 대왕릉을 배치하고 동쪽에 왕후릉을 배치하여 쌍릉을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영릉(寧陵)과 의릉(懿陵)의 경우처럼 지형적으로 동서로 나란히 두지 않고 상하로 배치하는 사례도 있었다.

경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두 왕후를 동서로 나란히 배치하여 쌍릉의 확장형으로 볼 수 있는 삼연릉으로 조성되어 조선 후기 능침 배치의 유연성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헌종경릉산릉도감의궤(憲宗景陵山陵都監儀軌)』
『효현왕후경릉산릉도감의궤(孝顯王后景陵山陵都監儀軌)』

단행본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Ⅸ』(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주1

자세히 보아 살핌.    우리말샘

주2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3

산릉을 옮겨 모심.    우리말샘

주4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5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영조와 계비 정순 왕후의 능. 동구릉(東九陵)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주6

조선 현종과 그의 비(妃) 명성 왕후 김씨의 능. 동구릉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주7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주8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주9

왕릉이나 지체 높은 사람의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문무관의 형상.    우리말샘

집필자
신지혜(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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