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元宗, 15801619)은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1587년에 정원군(定遠君)에 봉해지고, 1590년에 구사맹(具思孟, 15311604)의 딸과 결혼하여 능양군 · 능원군 · 능창군을 낳았다.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 16081623)에 의해 능창군이 유배되었다가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1619년 12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의 경계 속에서 양주 곡촌리에 급히 안장되었다.
1623년에 정원군의 장자 능양군이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조선의 제16대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가 된다. 인조는 즉위하여 아버지 정원군을 정원대원군으로, 어머니를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으로 봉하였다.
1626년 1월에 연주부부인이 경희궁 회상전에서 죽음을 맞게 되자 김포 성산 언덕에 묘소를 마련하고 안장하였다. 이때 정원군의 묘를 흥경원(興慶園)이라 하고 어머니의 묘를 육경원(毓慶園)이라 하였다. 1627년에 양주에 있던 흥경원을 이장하여 연주부부인의 육경원에 쌍분으로 장사 지내고 흥경원이라 불렀다.
1632년(인조 10) 이조판서 이귀(李貴, 15571633)의 주청으로 정원대원군의 신분을 원종에 추존하고 어머니 연주부부인은 인헌왕후(仁獻王后, 15781626)로 추봉하였다. 흥경원은 능으로 격상하여 장릉(章陵)으로 능호를 올렸다. 원(園)에서 능(陵)으로 격상되자 능제에 맞추어 혼유석(魂遊石),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망주석(望柱石) 등의 돌거리를 갖추었다.
김포 장릉은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침을 한 언덕에 조성한 쌍릉이며,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자리 잡았다. 능상은 계체석(階砌石)을 두어 단을 구성하여 상계에는 봉분과 망주석 · 혼유석이 있으며, 하계에는 장명등을 중심에 두고 문 · 무인석이 있다.
봉분에 병풍석(屛風石)과 난간석이 없이 사대석(莎臺石)만 둘러진 모습이 능제와 차이가 있다. 정자각(丁字閣)은 3칸의 정전(正殿)과 2칸의 배위청(配位廳)으로 구성되었으며, 동쪽에는 비각과 수복방(守僕房)이 있다. 홍살문 밖에는 연못과 재실(齋室)이 남아 있다.
김포 장릉은 본래 대군의 묘(墓)로 건립되었으나 인조의 즉위 이후 대원군과 부부인의 원(園)으로 격상하고, 원종과 인헌왕후로 추존되면서 능제를 갖추게 된 사례이다. 처음부터 능제로 건립된 조선왕릉과는 돌거리에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