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 경릉은 1457년 세자묘(世子墓)로 조성되었으며, 석실(石室)을 사용하고 사대석(莎臺石)과 난간석은 설치하지 않았다. 경릉은 능강의 석물도 매우 단촐하여 봉분 주변에 왕릉의 절반인 양석, 호석 각 1쌍이 설치되어 있으며, 앞에 혼유석과 장명등, 문석인과 석마가 건립되어 있다.
소혜왕후 경릉은 덕종릉 서쪽 언덕에 왕후릉으로 조영되었기 때문에 봉분에 난간석을 두르고, 그 주변에 양석, 호석이 2쌍 설치되어 있다. 봉분 앞에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 문석인과 무석인, 석마가 건립되어 있다. 소혜왕후는 1504년 4월 27일에 승하하는데 연산군(燕山君) 자신의 모친 폐비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숭하려 하고 있었으므로 소혜왕후의 상기(喪期)를 단축하기도 하였다.
경릉은 좌우 두 개의 언덕에 능이 각각 조성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덕종 경릉과 소혜왕후 경릉 사이에 정자각이 건립되어 있으며, 비각, 수복방, 홍살문 등이 남아 있다.
덕종 경릉의 장명등은 개석 위 아래를 관통하는 환기구가 뚫려 있는 3기의 왕릉 장명등 중 하나이다. 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성되어 석물이 잘 갖추어져 있으나, 비례와 좌우 균형 등이 무너진 작품으로 연산군 말기 능묘 석물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西五陵)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