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릉 ()

조선시대사
유적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비 정숙왕후 등주최씨의 능.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정숙왕후|익조
소재지
강원도(북한) 문천시
내용 요약

숙릉(淑陵)은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비 정숙왕후 등주최씨의 능이다. 정숙왕후는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 이행리의 왕후이며, 태조 즉위 후 정숙왕후 숙릉으로 추존되었다. 숙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없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목조 덕릉, 익조 지릉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숙릉은 현재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초한사(草閑社)에 있다.

정의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비 정숙왕후 등주최씨의 능.
건립경위

정숙왕후(貞淑王后) 등주최씨(登州崔氏)는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 ?~?)의 비로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정비(貞妃)로 추존하고, 숙릉(淑陵)으로 추봉하였다. 아들은 도조(度祖) 이춘(李椿, ?~1342)이다.

숙릉의 명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태종 재위 기간인 1400년대 초 왕릉의 모습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변천

숙릉은 1393년 표석이 건립되었으며, 조선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관리되었다. 1910년에는 고종(高宗)이 어필(御筆) 표석을 세웠으며, 숙릉뿐만 아니라 덕릉(德陵), 안릉(安陵), 지릉(智陵), 의릉(義陵), 순릉(純陵), 정릉(定陵), 화릉(和陵)에도 표석을 건립하고 1906년에 비각(碑刻)을 건립하였다.

형태와 특징

숙릉은 현재 사진 등의 자료가 없으며, 《북도각릉도형(北道各陵圖形)》에 개략적인 그림과 『북로능전지(北路陵殿志)』, 『 춘관통고(春官通考)』에 상설(象設) 등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위 기록 등을 살펴보면 숙릉의 상설은 목조(穆祖) 덕릉과 동일하며, 익조 지릉도 덕릉과 동일하다는 것으로 볼 때 지릉과 동일한 모습이라고 추정된다. 지릉은 상중하계(上中下階)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계에는 병풍석(屛風石)을 두른 봉분 앞에 상돌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주변에는 주1주2을 배치하고, 중계에는 장명등(長明燈), 주3주4, 하계에는 주5과 석마가 건립되어 있다. 아마도 숙릉도 이와 동일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숙릉 주6은 능 아래 150보, 주7은 정자각 서쪽 80보, 비각은 홍살문 서남쪽 300보, 주8은 홍살문 서쪽 340보에 있다.

금석문

1906년 건립된 비각 안에는 1393년과 1901년에 건립된 숙릉 표석 2기가 있다. 1393년에 건립된 숙릉 표석은 앞면에 ‘정비숙릉(貞妃淑陵)’, 뒷면에 ‘홍무이십육년시월일립(洪武二十六年十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1901년에 건립된 고종 어필 표석에는 앞면에 ‘대한정숙왕후숙릉(大韓貞淑王后淑陵)’이라는 전서(篆書)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주9가 있다.

의의 및 평가

숙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없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목조 덕릉, 익조 지릉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숙릉은 현재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초한사(草閑社)에 있다.

참고문헌

원전

『북로능전지(北路陵殿志)』
『춘관통고(春官通考)』
주석
주1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주2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주3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4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주5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주6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주7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주8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주9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집필자
김민규(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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