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조(翼祖)는 조선 태조(太祖, 13351408, 재위 13921398)의 증조할아버지로, 이름은 이행리(李行里)이다.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와 목조비 효공왕후(孝恭王后) 평창이씨(平昌李氏)의 아들이다. 익조비는 정숙왕후(貞淑王后) 등주최씨(登州崔氏)이며, 아들은 도조(度祖) 이춘(李椿)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왕(翼王)으로 추존하고, 지릉(智陵)으로 추봉하였다. 지릉의 정확한 조영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북도 8릉이 정비되는 15세기 초에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릉은 상중하계(上中下階)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계에는 병풍석(屛風石)을 두른 봉분 앞에 혼유석(魂遊石)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주변에는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을 배치하고, 중계에는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과 석마(石馬), 하계에는 무석인(武石人)과 석마가 건립되어 있다.
지릉 정자각(丁字閣)은 능 아래 70보, 홍살문은 정자각 아래 50보, 비각은 홍살문 동쪽 220보, 재실(齋室)은 홍살문 동쪽 300보에 있다.
1906년 건립된 비각 안에는 1393년과 1901년에 건립된 지릉 표석 2기가 있다. 1393년에 건립된 지릉 표석은 앞면에 ‘익왕지릉(翼王智陵)’, 뒷면에 ‘홍무이십육년시월일립(洪武二十六年十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1901년에 건립된 고종 어필 표석에는 앞면에 ‘대한익조대왕덕릉(大韓翼祖大王智陵)’이라는 전서(篆書)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음기(陰記)가 있다.
지릉은 15세기 초 북도 8릉과 함께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병풍석에 난간석(欄干石)이 없는 것이나, 망주석(望柱石)이 설치되지 않은 점 등은 태조의 선대 추존 왕릉과 동일한 형태이지만, 15세기 일반 왕릉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