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릉은 1659년 조성된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의 옛 영릉(寧陵) 자리이다. 1673년 천릉하면서 기존의 돌거리는 매장하였던 것을 1674년 현종(顯宗, 16411674, 재위 16591674) 숭릉(崇陵)에 재사용하였으며, 파손되어 재사용되지 않은 일부 돌거리가 원릉 주변에 있다. 지댓돌 등 일부 돌거리는 원릉에 재사용되었다.
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는 생전에 원비(元妃)인 정성왕후(貞聖王后, 16921757) 홍릉(弘陵)에 합장되고자 홍릉을 허우(虛右, 오른쪽을 비워 둠)의 제도로 조성하였다. 1776년 영조 승하 후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는 다른 좋은 자리를 찾게하여, 현재의 원릉이 있는 옛 영릉 자리로 바뀌었다.
1776년 영조 원릉 조성 때 정순왕후(貞純王后) 경주김씨(慶州金氏, 1745~1805)와의 합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1805년 정순왕후가 승하하자 능호(陵號)를 경릉(景陵)으로 정하였으나 이후 원릉에 합장되는 것이 결정되어 사용하지 않았다. 정순왕후 합장 시 혼유석(魂遊石)과 난간석(欄干石)을 추가로 제작하고, 장명등(長明燈)과 동쪽의 돌거리들을 이동해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원릉은 봉분에 난간석을 두르고 주변에 양석(羊石), 호석(虎石), 망주석(望柱石), 혼유석, 장명등,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석마(石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刻)이 있으며, 수복방(守僕房)은 현대에 재건되었고, 수라간(水剌間)은 남아 있지 않다.
비각에는 3기의 표석이 건립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정면 3칸, 측면 1칸의 구조이다. 비각 안의 표석은 앞면에 ‘조선국(朝鮮國) 영종대왕원릉(英宗大王元陵)’(1776년), ‘조선국(朝鮮國) 영조대왕원릉(英祖大王元陵)’(1890년), ‘조선국(朝鮮國) 정순왕후부좌(貞純王后祔左)’(1805년)라고 새겨져 있다.
1776년에 건립된 원릉 표석은 앞뒷면의 글씨를 정조, 1890년 표석은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 썼으며, 정순왕후 표석의 앞면은 이만수(李晩秀, 17521820), 뒷면 음기(陰記)는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이 짓고, 서용보(徐龍輔, 1757~1824)가 썼다.
원릉 돌거리는 18세기 후반 사실적이며 섬세한 조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정성왕후 홍릉, 인원왕후(仁元王后, 1687~1757) 명릉(明陵)의 돌거리 도상(圖像)과 양식(樣式)을 계승한 작품이다. 그래서 석인상(石人像)의 얼굴은 온화하며, 장명등은 화려하고, 망주석의 세호(細虎)는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원릉은 사적 ‘ 구리 동구릉(九里 東九陵)’ 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