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이전의 사실을 전하는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의 고구려조에 나오는 고구려의 10관등 중 상가(相加)·대로(對盧)에 이은 제3위의 관등이다.
그러나 대로를 둘 때는 패자를 두지 않고, 패자를 둘 때는 대로를 두지 않는다고 하였으므로 대로와 패자는 같은 지위에 있었으며, 동일한 직능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로는 지난날의 부족장적(部族長的) 성격을 지닌 데 비하여, 패자는 행정적·관료적 성격을 보다 많이 지닌 것으로 보인다. 즉, 대로가 임명될 때에는 고구려사회에 부족장적 전통이 더욱 컸을 것이며, 반대로 패자가 임명될 때에는 왕권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서(周書)』 이후부터는 대로와 함께 패자의 기록도 나오지 않으며, 수상직으로는 대대로(大對盧)만이 나온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가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전환되면서 관등체계도 왕을 중심으로 한 일원적(一元的)인 체계로 바뀌어갔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