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호(扁壺)는 주로 고려 후기에 청자(靑瓷)와 도기(陶器)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몸통의 양면이 평평하게 눌린 것이 특징이다. 도자기의 동체를 두드려 한 면(面) 또는 그 이상의 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제작 방식은 고려 후기 이전부터 확인된다. 동체가 납작한 편호는 일반적인 항아리에 비하여 벽에 붙여 보관하거나 편호들끼리 잇대어 보관하기에 편리하다. 고려 후기에 주로 제작되던 편호는 조선시대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제작된 많은 기종이 도기로도 만들어졌다. 편호 역시 청자와 도기로 만들어지며 주로 고려 후기에 유행하였다.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출토된 「청자 상감금채수하원문 편호(靑瓷象嵌金彩樹下猿紋扁壺)」는 완성된 청자의 유약면 위에 금칠로 장식을 추가한 화려한 작품이다. 작품의 한쪽 면에는 나무 아래에 두 손으로 복숭아를 받쳐 든 원숭이가, 그 반대편에는 나무 아래에 자리한 토끼가 묘사되어 있다. 문양은 흑백 상감 기법으로 표현되었고 문양을 따라 금채(金彩)된 선문(線紋)이 유약면 위에 자리한다.
청자를 금채로 장식한 화금청자(畵金靑瓷)는 주로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조인규전(趙仁規傳)에는 조인규(1237∼1308)가 원나라의 사신으로 가서 원 세조(世祖)와 화금 청자에 관해 대화를 나눈 기록이 있다. 「청자 상감금채수하원문 편호」를 통하여 고려 후기에 화금 기법으로 제작된 청자의 모습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청자 편호에 남아 있는 문양은 대부분 고려 후기의 특징을 나타낸다.
편호의 입구[구연부(口緣部)]는 대부분 반구형(盤口形)이며 그 아래로 이어지는 기측선(器側線)은 짧은 목을 지나 동체로 연결된다. 동체는 어깨를 지나며 벌어져 중단 정도에서 최대 크기를 이루었다가 저부로 갈수록 좁아들어 평평한 밑바닥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형태는 청자 편호와 도기 편호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다. 편호의 반구형 구연부는 고려 말기까지 동일한 형태를 유지한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매병(梅甁)과 주병(酒甁)의 반구형 구연부가 14세기를 지나면서 나팔형으로 바뀌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다. 편호는 구연부의 형태가 고려 말기까지 반구형으로 유지되며, 고려 말기로 갈수록 동체의 폭이 좁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청자 편호의 문양은 주로 상감 기법으로 장식되며, 구연부와 저부에 연주문(聯珠紋)·뇌문(雷紋)·연판문(蓮瓣紋)·여의두문(如意頭紋) 등으로 이루어진 여러 단의 종속 문양이 자리한다. 평평하게 만들어진 동체의 양면에는 능화형(菱花形)으로 문양대를 만들고 그 안에 용문(龍紋)·누각인물문(樓閣人物紋)·포류수금문(蒲柳水禽紋)·국화문(菊花紋) 등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 측면에 연화당초문(蓮花唐草紋)이 주로 배치된다.
편호는 일반적인 항아리를 만드는 방식과 동일하게 동체를 성형한 다음에 동체를 두드려 양면을 평평하게 마무리한다. 도기 편호에는 대체로 아무런 문양이 장식되지 않지만 일부 도기 편호의 어깨 양쪽에는 괴수형(怪獸形)의 양각 장식이 부착되기도 한다. 청자 편호에는 다양한 문양이 상감 기법으로 장식된다. 또한 일부 편호는 산화철이 포함된 흑갈색의 유약이 그릇 전체에 시유되는 등 비교적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서 조사된 마도(馬島) 3호선은 1260년대 후반에 침몰된 고려시대 선박이다. 수도 개경으로 가다 침몰된 이 배에서 45점의 도기 호가 출수(出水)되었는데 그 중 편호 항아리는 3점 정도였다. 도기 편호 한 점은 구연부가 초본류로 밀봉된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다른 도기 편호는 ‘물고기 기름 한 항아리[魚油一缸]’라고 쓰인 목간(木簡)과 함께 출수되었다. 함께 출수된 도기 호에는 곡물, 씨앗, 어패류 등이 담겨 있기도 하였다. 편호는 다양한 형태의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이며 몸통의 양면이 평평하기 때문에 벽에 붙여 기대어 두거나 편호끼리 잇대어 두기에 편리한 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