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 권 5 「피은편(避隱篇)」 「포산이성(包山二聖)」 조에 실려 있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구전 설화가 전해지나, 도성(道成)과 관기(觀機)에 대한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라시대에 관기와 도성이라는 두 성사(聖師)가 포산(包山)에 숨어 살았다. 관기는 남쪽 고개에 암자를 지었고 도성은 북쪽 굴에 살았는데, 서로 10리 가량 떨어져 있었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면 산속의 나무가 모두 남쪽을 향해 굽히며 서로 영접하는 것 같았는데 관기가 이를 보고 도성에게 갔다. 관기도 도성을 맞이하고자 하면 나무가 북쪽을 향해 구부러졌는데 도성이 이를 보고 관기에게로 갔다. 두 성사는 서로 구름길을 헤치고 만나 달밤 아래 노래하면서 서로 교류하였다. 하루는 도성이 자신이 거주하던 뒷산 바위 사이에서 몸을 빼내 온몸을 하늘에 날리며 세상을 떠났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관기도 도성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려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두 성사가 거처하던 터가 남아 있다.
도성암(道成巖)은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는데 후인들이 돌구멍 밑에 절을 지었다. 태평 흥국 7년(982)에 승려 성범(成梵)이 이 절에 살면서 미타도량[彌陀道場]을 열어 부지런히 불도를 닦았는데 여러 차례 상서(祥瑞)가 일어났다. 이때 현풍의 신도들은 해마다 포산에서 향나무를 채취하여 절에 바쳤는데 향을 쪼개어 발 위에 펼쳐 두면 그 향나무가 밤에는 촛불처럼 빛을 발했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향을 바치는 무리에게 시주를 하고 빛이 발한 해를 축하하였고, 이 일을 두고 두 성사의 보살핌이자 산신의 도움이라 하였다. 이때 산신은 '정성천왕(靜聖天王)'이었는데, 일찍이 가섭불(迦葉佛) 시대에 부처님의 부탁을 받아 발원 맹세를 하고 산중에서 1,000명의 수도자가 출현하기를 기다려 남은 과보를 받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일연(一然)은 이 이야기의 말미에 해당 산속에 거했던 아홉 성사의 이름을 관기, 도성과 함께 열거하였다. 아홉 성사의 이름은 관기 · 도성 · 반사(㮽師) · 첩사(楣師) · 도의(道義) · 자양(子陽) · 성범(成梵) · 금물녀(今勿女) · 백우사(白牛師)이다.
『삼국유사』에는 깨달음에 이르거나 성불하기 위해 수행에 나선 두 인물의 이야기를 나란히 두어 구성한 이야기들이 여러 편 있다. 광덕(廣德)과 엄장(嚴莊), 노힐부득(努肸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 원효(元曉)와 의상(義湘) 등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들 이야기에서는 수행의 태도와 종교적 관점 등이 대비되어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포산 이성 설화」 또한 두 인물을 나란히 두고 있지만 다른 이야기들과는 구별되는 양상을 보인다. 등장 인물의 신이함과 영험함에 서술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두 승려가 세상을 피해 살면서 이룬 기이한 행적과 우정을 전체 서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부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