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청춘(靑春)』 창간호에 소개되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작자는 1796년(정조 20)에 상경하여 무과에 급제하고, 충장장(忠壯將)의 직명으로 근친차(勤親次) 고향에 내려왔다.
이 때 선인 7명과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폭풍으로 표류하여, 대만과 중국 내륙지방, 북경(北京), 요동벌판을 거쳐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오기까지의 고행담을 자세히 술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술회가사이므로 음수율도 자유롭고 길이도 아무 제한없이 자유롭게 서술된 장편가사이다.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일엽편주에 몸을 의지하여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무사히 헤쳐나옴으로써 굳세게 살아난 작자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해양문학 작품이라 하겠다.
「표해가」의 종결구를 통해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략)……/어화 이내 몸이 하향(遐鄕)의 일천부(一賤夫)로/해도중(海島中) 죽을 목숨 천행(天幸)으로 다시 살아/천하대관(天下大觀) 고금유적(古今遺蹟) 역역히 다 보고서/고국에 생환(生還)하야 부모처자 상대(相對)하고/또 이날 천은(天恩) 입어 비분지직(非分之職)하였으니/운수도 기이(奇異)할사 전화위복(轉禍爲福) 되었도다/이 벼슬 과만(瓜滿)하고 고토(故土)로 돌아가서/부모께 효양(孝養)하며 지낸 실사(實事) 글 만들어/호장(豪壯)한 표해광경(漂海光景) 후진(後進)에게 이르과져/천하에 위험(危險)한 일 지내노니 쾌(快)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