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4년(순조 24) 홍간의 후손 홍석주(洪奭周)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홍석주의 발문과 중지(重識)가 있다.
6권, 별집 합 3책. 전사자본(全史字本).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홍애공문(洪厓公文)·문경공문(文敬公文)·추만공문(秋巒公文), 권2에 문의공문(文懿公文)·정간공문(貞簡公文), 권3에 회계공문(晦溪公文)·수은공문(睡隱公文), 권4에 정혜공문(靖惠公文)·효안공문(孝安公文), 권5에 문청공문(文淸公文)·통덕랑공문(通德郎公文)·증찬성공문(贈贊成公文), 권6에 효헌공문(孝獻公文)·족수공문(足睡公文)이 수록되어 있다. 별집은 원집에서 누락된 문의공의 시·제문, 수은공의 시, 정혜공의 시·서(敍)·묘표, 문청공의 서(序)·설(說)·묘지명, 족수공의 시, 부록으로 행장 1편이 수록되어 있다.
「홍애공문」은 홍간의 시로, 그는 시문에 능하고 시풍(詩風)이 청려(淸麗)하였다. 그의 시는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수록되어 있다. 「문경공문」은 홍이상의 시문으로, 그는임진왜란 때 일본 장군들간의 이간책을 시행하는 등 곡절이 많았는데, 그의 문장도 경절(驚絶)한 바 있다. 『모당유고(慕堂遺稿)』는 그의 문장을 엿볼 수 있는 저작이라 하겠다.
「문의공문」은 홍주원(洪柱元)의 시문으로, 이 가운데 소는 조윤석(趙胤錫)과 박장원(朴長遠)에 관한 것이다. 이들이 비록 왕의 위엄을 범했지만 중신(重臣)인 점과 가사를 생각하여 관대하게 처분해 달라는 내용이다. 글과 말이 모두 간곡하고 충직하다.
「청허루중건기(淸虛樓重建記)」는 홍상한(洪象漢)의 저작이다. 원주 주천(酒泉)에 있는 청허루(淸虛樓)는 경치 좋기로 이름 있는 곳이었다. 1720년(숙종 46) 심정보(沈廷輔)가 원주목사로 있을 때 숙종이 이곳의 경치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고 칠언율시 한 편을 지어 하사하였다. 이것을 판(板)에 새겨 걸고 많은 사람이 모여 연회를 벌인 후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 후 1758년 임집(任0x9C4A)이 원주목사로 와서 중건하고 다시 숙종의 유시(遺詩)를 청하여 글을 올리자, 영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어필을 내려보내고 목사에게도 상을 내렸다고 한다.
한 집안에서 14대 동안 문명을 날린 사람이 십여 명에 달하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또한, 문적이 산일(散佚)되지 않고 잘 수습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