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며, 아찬(阿飡) 존대(尊臺)의 아들이다. 659년에 칠중성(七重城 : 지금의 경기도 적성) 밑의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고구려·백제·말갈이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공하자 태종무열왕은 이 방면의 방비에 힘을 기울였다.
660년 7월 백제가 멸망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고구려가 그해 10월 군사를 내어 칠중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이때 그가 신라군을 이끌고 힘을 다하여 대항하자 고구려군은 성을 함락할 수 없음을 알고 돌아가려 하였으나, 대나마(大奈麻) 비삽(比歃)이 성안에 식량이 떨어지고 힘이 다하였음을 고구려군에게 알렸다.
이에 비삽의 머리를 베어 성밖으로 던지고 군사들을 독려하여 싸웠으나, 성은 함락되고 그도 전사하였다. 급찬(級飡)의 벼슬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