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우석(禹碩), 호는 사헌(思軒). 진주 출생. 아버지는 하한조(河漢祖)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박기찬(朴基禶)의 딸이다. 이우빈(李佑贇)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3년(철종 4) 무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857년 수문장으로 기용되었다. 이듬해 부사과(副司果)를 지내고 1860년 훈련원첨정·어영파총(御營把摠) 등을 역임하고, 1862년 거제도호부사로 나갔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에는 순무사중군(巡撫使中軍) 이용희(李容熙)의 종사관이 되어 난리를 수습하였고, 1870년 신도진절제사 재임시에는 중국의 어선이 경계를 침범하여 어로하는 것을 나포하여 주민의 어업권을 보호하였다.
또한, 강계도호부사 겸 청북병마우방어사로 있을 때에는 회재서원(晦齋書院)의 철폐를 막았고, 민폐를 제거하는 등의 선정을 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향리의 화산에 정자를 지어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선현들의 심성에 관한 글들을 모아 「이기집설(理氣輯說)」을 펴내고, 조상들의 제사에 대한 기록을 모아 「봉선록(奉先錄)」을 편찬하였다. 저서로는 『사헌집(思軒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