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평(子平). 호는 창주(滄州). 진주 내당리(內塘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인 하위보(河魏寶), 어머니는 이씨(李氏)로 참의(參議) 이윤(李綸)의 딸이다.
숙부 하국보(河國寶)에게 입양되었으며, 가정의 학문을 전수 받았다. 하증은 기질(氣質)이 순후(純厚)하고 지조(志操)가 독실(篤實)하여 자기를 다스리기를 매우 엄하게 하였으며, 군서(群書)를 박람(博覽)하여 어려운 곳은 반드시 질의(質疑)와 논란(論難)으로 해결했다.
임진왜란 때 양모인 강씨(姜氏)가 절개를 지켜서 죽었으므로 평생 동쪽을 향한 일이 없었고, 조카 하지상(河智尙)이 여섯 살의 나이로 적진중(賊陳中)에 끌려 갔을 때 힘써 구해냈다. 아우 하변(河忭)이 적진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하므로 부산(釜山)을 세 번이나 왕복하면서 구해냈다.
『계몽황극서(啓蒙皇極書)』를 지어 후진을 가르쳤다. 뒤에 조정에서 정려(旌閭)의 은전을 받고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창주집(滄洲集)』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