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키 (hoc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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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대회 / 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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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개념
스틱을 가지고 공을 상대편의 골에 넣어 승부를 겨루는 운동경기. 운동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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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스틱을 가지고 공을 상대편의 골에 넣어 승부를 겨루는 운동경기. 운동경기.
내용

하키는 각 16명 이하로 구성된 두 팀 사이에 각각 11명의 선수가 스틱의 평평한 한쪽 면으로 공을 몰아 시간 내에 상대편의 골에 공을 넣어서 승패를 결정하는 경기이다. 아이스하키, 롤러하키 등과 구별하기 위하여 필드하키(field hockey)라고도 한다. 남녀 구별 없이 행하여지며 날씨에 관계없이 인조잔디(살수시설을 갖춘)의 평탄한 구장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인조잔디가 없는 경우에는 잔디를 짧게 깎은 천연잔디나 모래로 된 인조구장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 공의 속도가 대단히 빠르고 선수의 운동범위가 크며, 스트라이킹 서클의 제약을 받는다. 스트라이킹 서클은 공격측이 공을 쳐서 득점이 되는 지역, 수비측의 반칙시 페널티 코너(penalty corner)가 주어지는 지역, 골키퍼가 공을 찰 수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팀의 편성은 포워드 5명, 하프백 3명, 풀백 2명, 골키퍼 1명이지만 근래에 와서는 전술상 여러 모양의 편성이 연구되고 있다. 시합은 센터 패스(center pass)라는 방법에 의해 시작되는데 경기장 중앙에서 플레이된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푸시나 히트를 할 수 있으며 패스를 실시하는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는 자신의 진영에 있어야 한다.

진영을 선택하지 못한 팀의 선수에 의해서 경기가 시작된다. 상대방을 때리거나 그 밖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으며 공을 발로 차거나 몸으로 받아서도 안된다. 다이나믹한 경기진행을 위하여 오프 사이드는 폐지되었으며 반칙을 범하였을 경우에는 상대방의 프리히트로 시합을 다시 시작한다.

수비진이 자기 진영 안에서 반칙을 범하였을 경우에는 그 내용에 따라 페널티 코너라든지 페널티 스트로크의 권리가 공격측에 주어진다. 골키퍼는 서클 안에 한하여 공을 발로 찰 수 있다. 심판원은 2명이고, 각각 경기장의 반씩을 담당한다. 시합시간은 전후반 각 35분이며 그 사이에 5∼10분간의 휴식이 있다.

득점은 공이 공격 선수에 의해 스트라이킹 서클 안에서 플레이되는 동안 골포스트 사이 크로스바 밑의 골라인을 완전히 통과한 경우에만 득점이 되며 스트라이킹 서클 밖에서의 슛은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경기장은 장방형으로 길이 91.4m, 폭 55.0m의 인조잔디 운동장을 사용한다. 골대는 높이 2.14m, 폭 3.66m이고 양쪽 골포스트 위에 크로스바가 걸쳐져 있다. 크로스바와 골포스트 정면의 폭은 5.1cm이다. 골 위로부터 지면까지 네트를 걸치고, 골 아래쪽에 길이 1.20m와 높이 46cm를 넘지 않는 높이로 골보드를 네트 바깥쪽에 두른다.

스틱은 목제이고 좌측만이 평면이며 경기는 편평한 부분으로만 하며, 이 부분이 끝나는 그 위쪽부터는 손잡이에 해당한다. 중량은 최대 737g이며 크기는 직경 51mm의 링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공은 단단하고 둥글어야 한다. 무게는 최소 156g에서 최대 163g이어야 하며 둘레는 최소 224mm에서 최대 235mm로 규정되어 있고, 색상은 흰색이나 허용된 기타의 색도 있다.

복장은 보통 깃이 달린 셔츠, 쇼트 팬츠를 입고 정강이 보호대, 입보호대 등의 보호용구를 부착한다. 신발은 금속제의 포인트로 된 스파이크는 금하며, 고무제의 포인트로 된 스파이크나 즈크화를 신는다. 골키퍼는 레그가드를 장착하고 프로덱터, 장갑, 고정된 안면 보호대와 뒷머리와 목을 감싸주는 모양의 헬멧, 팔꿈치 보호대 등을 착용하는 것이 강력하게 권장되고 있다.

스틱을 이용한 경기는 고대로부터 중세에 걸쳐 유럽에서 성행하였고, 현재까지도 헐링(hurling)·신디·밴디는 하키와 유사한 경기형태로서 북유럽지역에서 지속되고 있다. 근대하키는 1886년 영국하키협회(BHA)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와 거의 같은 규칙 및 경기장 규격이 갖추어진 것은 영국하키협회의 웨스트매코트(Westmacott.E)의 노력에 의해서였다.

‘근대하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웨스트매코트는 일명 ‘D서클’인 스트라이킹 서클을 제정하였고, 오늘날과 같은 경기규칙을 확립하여 하키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대회부터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7년 6월 일본에 유학하였던 체육인을 중심으로 창립총회를 열어 조선하키협회를 발족시켰다. 이어 10월에 개최된 조선체육회 주최 제2회 조선올림픽대회에 시범경기로서 우리 나라 최초의 경기가 거행되었다. 또한 같은 해 12월 10일과 11일 양일간에 제1회 종합하키선수권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6·25전쟁 등으로 잠시 중단되었으나 1957년 재일교포팀의 고국방문을 계기로 기술발전의 큰 성과를 거둠과 동시에 9월에는 대한필드하키협회가 다시 조직되었다. 1958년에는 국제하키연맹(FIH) 및 아시아하키연맹(AHF)에 가입하였으며, 같은 해 동경에서 거행된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인도팀에게 2:1로 패하였으나 1928년 이래 국제대회에서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던 인도하키팀으로부터 1점을 선취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뒤 1966년에 지금의 대한하키협회로 개칭되었으며 몇 차례의 국제대회에 참가하였으나 그 성적이 부진하였고, 국내대회도 저변인구의 부족으로 활발히 거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2년 뉴델리에서 거행된 제9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자하키팀이 은메달을 획득하고, 이듬해에 대륙간컵 쟁탈 여자하키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6년에는 서울에서 거행된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녀팀이 모두 우승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1988년의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 여자하키팀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90년 제11회 북경아시아경기대회 여자하키팀이 금메달, 1994년 제12회 히로시마아시아경기대회 남·녀팀이 모두 금메달,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경기대회에서 여자하키팀이 은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998년 제13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자팀이 금메달, 남자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의 눈부신 성장을 하였다.

현재 대한하키협회의 산하단체로는 각시·도협회와 중고 및 대학하키연맹이 있으며, 대한하키협회가 주최 및 주관하는 전국 규모 대회는 전국 춘계남녀하키대회, 협회장기 전국 중고남녀하키대회,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중고하키대회, 전국 종별하키선수권대회, 한국통신사장기 전국 남녀고교하키대회, 대통령기 전국시도대항하키대회, 챔피언스컵 남녀하키대회 등이 있다. 하키는 1999년 12월 현재 대한하키협회에 등록된 팀은 102개이고, 등록선수는 1,800여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1990년, 1994년, 1998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의 금메달, 1988년, 1996년 올림픽에서의 은메달 획득으로 국민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경기의 양적·질적 수준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참고문헌

『대한체육회 70년사』(대한체육회, 1990)
『하키』1-1(대한하키협회, 1983)
『체육백과사전』(대한체육회. 1972)
「하키」(임번장·김동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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