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애국지사들은 기울어진 국운을 회복하기 위하여 근대적인 지식의 보급과 민중교화를 위한 교육계몽운동을 펼쳤다.
이에 따라 1904년 9월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 등을 비롯하여 순수한 학회는 물론, 정치활동과 경제 부흥 및 애국 계몽을 위한 각종 학회가 설립되었다.
이들 학회에서는 의연금을 거두어 학교 경영이 어려운 사립학교를 원조해 주었고, 교원이 부족한 학교에는 학회 본부에 임시 교원양성소를 설치하여 유능한 젊은 교원을 일정한 기간 동안 훈련한 뒤 파견하였다. 또한 교과서를 편찬하여 무료로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전개는 교육 구국(敎育救國)에 기초를 둔 것으로,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실력을 양성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자주적으로 주권을 찾고자 함이었다.
통감부는 이러한 학회의 적극적인 계몽활동을 경계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학회가 안녕질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직접 간접으로 위협을 가하더니, 1908년 8월 26일 칙령 제63호로 「학회령」을 공포하였다.
이에 따르면, 학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청원서에 설립자 및 목적·명칭·사업·사무소 위치·회원 자격·입회 및 퇴회·임원 선정·경비수지·자산, 지회에 관한 사항 등을 기재한 회칙을 첨부하여 학부대신의 인가를 받도록 하였다.
또한 회칙을 변경할 때와 회장의 신임 및 퇴임(退任), 1년간의 재산 및 회무상황과 회원수 등을 학부대신에게 보고하여야 하며, 「학회령」 또는 설립인가의 조건을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한다고 인정되는 행위를 할 때 학부대신은 그 인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방장관은 학부대신의 지휘를 받아 소관 내의 학회를 감독하도록 하는 등 학회의 자율적인 활동을 전면 통제하였다. 이에 따라 근대적인 의미의 정치·계몽·사회 단체로 등장한 학회활동은 크게 위축되었으며,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서북학회(西北學會) 등의 학회는 강제해산을 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