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인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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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단체
영화예술인 상호간의 친목과 권익을 옹호하고 한국영화예술의 발전을 기하기 위하여 설립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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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영화예술인 상호간의 친목과 권익을 옹호하고 한국영화예술의 발전을 기하기 위하여 설립된 단체.
내용

1955년 한국영화인협회가 창설되어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5.16혁명이후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해체되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韓國藝術文化團體總聯合會)로 개편 결성되면서 본협회도 발전적 해체로 1962년 한국예총산하에 한국영화인협회를 설치하였다.

초대이사장으로 윤봉춘(尹奉春)님이 취임한 이래 현 이두용(李斗鏞)이사장 직무대행까지 20대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산하단체로서는 감독협회·배우협회·기술협회·기획창작협회·시나리오작가협회·음악작곡가협회·조명감독협회·촬영감독협회의 8개협회를 두고 있으며, 또한 부설로 대종상영화제사무국·영상기술교육원·영상작가교육원·조명아카데미·기획실 등을 두고 대종상영화제 및 영화의 날 기념행사, 영화인 인명DB 작업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각 지역에 14개의 지회 및 지부를 두고 있으며, 총 회원수는 순수영화인으로 3,0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본협회는 1945년부터 1962년까지 국산영화 보호육성을 위해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 영화제작기자재 도입, 외국영화 수입조절 등의 운동을 전개, 성과를 거두어 영화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63년부터 1970년까지 한국영화 발전에 저해되는 영화법(映畵法)의 폐지운동과 영화인 궐기대회를 개최, 영화계의 쇄신을 주장하는 투쟁적 과정을 거쳐 1971년 2월 새 영화법제정을 실현, 성과를 보았으며 한국영화의 장도적인 발전을 기반으로 새 영화법에 의하여 한국영화 진흥조합이 탄생되어 영화진흥에 기여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투>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날을 “영화의 날”로 제정, 1963년부터 매년 영화의 날을 맞이하여 기념, 자축의 자리를 마련, 영화발전에 공적이 큰 영화인을 선정, 표창과 아울러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과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대안에 대한 영화진흥세미나 및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또한 영화인의 자질향상과 영화를 지향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영화육성의 참되고 바른 지식을 가르쳐 영화예술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연례행사로 영화 특별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1995년부터는 스크린쿼터 사수 및 영화인 위상확립, 영화진흥법 개정 등 한국영화진흥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전영화인이 협력하여 큰 성공을 이루어 냈다.

1962년부터 문화공보부와 영화진흥공사가 주최 시행해 왔던 대종상영화제 시상을 1987년부터 한국영화인협회에서 이관받아 매년 영화제를 집행하고 있으며, 1972년 한국영화인협회가 영화인복지재단을 설립해 11억원의 복지기금을 조성, 그 과실금으로 원로영화인 연금, 영화인 자녀 장학금, 사망자 위로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그밖에 사업으로 한국영화인 홈페이지 운영, DB구축활용사업, 한국우수영화감상회, 영화인해외연수, 포스타·스틸전시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시나리오대상 시상식, 신입감독 및 배우 워크숍, 영화배우cb-rom, 영화음악 cd-rom 제작, 영화기획총람 발간, 영상기술지 발간, 조명아카데미, 영상기술교육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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