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4년 작. 비단바탕에 담채(淡彩). 세로 53㎝, 가로 67.2㎝. 미국 클리블랜드미술박물관( Cleveland Museum of Art) 소장. 그림의 왼편 상단부에는 ‘萬曆甲申秋養松居士爲安士確作寒林霽雪圖(만력갑신추양송거사위안사확작한림제설도)’라는 관지(款識)가 쓰여져 있고, ‘金禔季綏(김시계수)’라는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찍혀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김안로(金安老)의 아들인 김시가 만 60세 때인 1584년(선조 17) 가을에 안사확이라는 사람을 위하여 그린 그림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나 안사확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눈이 온 뒤의 설경을 담은 이 작품은 김시가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절파계화풍(浙派系畫風) 외에도 안견파화풍(安堅派畫風)을 따라 그렸음을 밝혀준다.
왼편 절반부에 무게가 치우친 편파구도(偏頗構圖), 널찍한 공간구성, 수지법(樹枝法) 등에는 안견파의 전통이 강하게 엿보인다. 그러나 비스듬히 솟아오른 주산(主山)의 형태와 표면묘사에는 절파의 영향도 약간 감지된다.
즉, 안견파화풍을 위주로 하고 절파적인 요소를 곁들이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김시 이후의 조선 중기 화가들의 작품들에서도 간취되고 있어 그 시대 회화에 있어서 김시의 괄목할만한 영향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