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전기회사 ()

근대사
단체
1898년 1월서울에 설립된 전기회사.
목차
정의
1898년 1월서울에 설립된 전기회사.
개설

김두승(金斗昇)·이근배(李根培)의 청원으로 세워진 뒤 1909년 8월까지 존재했으며 초기 자본금은 30만 원(圓)이었다.

연원 및 변천

대표적인 친미파 인사였던 이채연(李采淵)·이윤용(李允用) 등이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사장이 회사를 관장하고 업무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고종을 위시한 황실 권력층이 산업진흥정책의 일환으로 근대화 노선을 추구하면서 설립한 회사였다. 그러나 회사운영 도중 자본·기술이 부족해 미국측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 회사의 모든 사업은 미국인 콜브란(Collbran)·보스트윅(Bostwick)과 맺은 도급계약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운영은 당시 대한제국 정부의 친미의뢰정책 때문에 가속화되었다.

특히, 콜브란·보스트윅과 도급계약을 맺을 때 회사의 전재산과 이권까지도 담보로 제공, 그 소유권마저 박탈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공사비용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자, 회사소유권의 일부가 콜브란·보스트윅에게 넘어갔다.

1904년 7월 회사의 명칭이 한미전기회사(韓美電氣會社)로 변경되면서 콜브란·보스트윅은 공사 도급업자에서 주도적인 소유자로 부상하였다. 그 뒤 1909년 콜브란이 이 회사를 일본의 국책회사인 일한와사회사(日韓瓦斯會社)에 매도함으로써 회사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 회사에서는 주로 한성의 전차·전등사업을 운영하였다. 전차사업의 예를 보면 1898년에 착공하여 1899년 5월 개통한 남대문∼홍릉 간 전차노선 부설사업이 있다. 이 노선은 1899년 12월에 개통된 종로∼용산 간 전차노선과 연결되었다.

전등사업으로는 1898년에 시작해 1900년에 완성한 동대문전등발전소를 들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한성에 점화된 전등 총수는 380수 등, 5만 5000촉 등이었다. 1903년에는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마포에 제2발전소, 남대문에 변전소를 건설하였다.

이밖에 전화사업독점권도 가지고 있었으나 별다른 활동은 없이 이권수호에만 관심을 가졌다. 대한제국의 비자주적 자세로 인하여 국내의 이권들이 외국에 양도되는 상황 및 미국 이권의 성격을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참고문헌

『구한국외교문서(舊韓國外交文書)』 10∼12(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구한국외교문서편집위원회, 1967)
「대한제국시기(大韓帝國時期)의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에 관한 연구(硏究)」(노인화, 『이대사원(梨大史苑)』 17, 1980)
『京城電氣株式會社 20年沿革史』(善積三郎, 京城電氣株式會社, 1929)
Despatches from U. S. Consul to Korea : Communication to the Secretary of State from U. S. Representation to Korea(Allen Papers(Allen, H.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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