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崔濟愚)는 1860년(철종 11) 4월 5일 종교체험중에 한울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며, 그 뒤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한울님을 위하며 살도록 하기 위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 동학의 핵심은 시천주신앙(侍天主信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한울님을 모시는 신앙이다.
한울님을 모신다는 것은 안으로는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內有神靈], 밖으로는 남이나 다른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外有氣化], 온 세상 사람들이 각기 스스로 깨달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깊은 자아의 영역에 신념을 가지는 것[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이다.
최제우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며, 한울님은 인간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최제우의 종교적 체험 때 있었다고 하는 상제의 계시는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실한 마음 속에서 스스로 우러나온 것이다.
‘시천주’란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한울님과 일체가 되기 위해 자기의 인격수련과 올바른 삶의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최제우의 시천주신앙에서 한울님 관념은 고대농경사회의 ‘한울사상’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천(天)은 토질 및 인력과 더불어 핵심적인 중요성을 띠는 요소로서, 천신·지신·조상신 숭배사상을 낳게 되고, 점차 보다 큰 부족국가사회로 발전됨에 따라 천신위주의 ‘한울사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등은 한울숭배의 예들이다. 그리고 한울이라는 용어는 한알·한얼·한·하늘·하느님 등으로 변형되어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최제우의 ‘한울’은 이러한 전통적 천사상(天思想)을 새로운 맥락 속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님’에 대해서는 최제우가 천주의 주(主)를 언급하고 <논학문 論學文>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주(主)는 그 높은 덕을 찬양하여 부모와 같이 섬기는 것이다(主者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천주라는 말은 하늘에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님’의 의미를 붙인 것으로 ‘한울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동학의 천주는 서학의 천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학의 천주는 라틴어의 데우스(Deus)를 옮긴 것이나, 동학의 천주는 우리 겨레의 전통적인 한울님신앙을 한자말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학에서 천주님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서학에서는 천주가 신(神)을 뜻하므로 여기에 존경의 의미로서 ‘님’을 다시 붙여 말하는 것이다. 최제우도 동학과 서학은 “도(道)는 같으나 이치는 다르다(道則同也 理則非也).”라고 하였으나, ‘천주’라는 용어상에서 같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동학과 서학이 다름없다고 보고 탄압하게 되었다.
“지금 동학이라고 하는 것은 서양의 종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직 그 이름만 바꾸어 어리석은 백성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고종 1년 갑자(甲子) 3월 2일의 ≪승정원일기≫ 기록은 당시 조정의 동학에 대한 인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천주’라는 글자 때문에 동학이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등 많은 오해가 있으나, 이 의미가 조상전래의 한울님이라는 것을 파악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