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에는 그 이름이 한음(韓陰)으로 되어 있으나 『한서(漢書)』에는 ‘한도(韓陶)’라고 되어 있다. 위씨조선의 중앙정부에 참여하여 상(相)의 관직을 받았다.
서기 전 109년 한무제(漢武帝)의 군대가 위씨조선을 침략하자, 조선상(朝鮮相) 노인(路人) 등과 함께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여 우거왕(右渠王)에게 항복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이 건의가 거부되자 서기전 108년노인 등과 더불어 왕검성(王儉城)을 탈출하여 적군에게 항복하였다. 이 투항으로 한(漢)나라의 열후(列侯)로 봉해져 적저후(荻苴侯)가 되어 죽을 때까지 열후의 직을 누렸다. 후사(後嗣)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