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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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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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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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6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은행.
내용

조병택(趙秉澤)을 필두로 하는 실업계 내지 지주출신의 인사 30여명의 발기로 1906년 5월 설립인가를 얻어 발족하였다.

처음의 공칭자본금은 15만원이었으나 1907년 7월 50만원으로 증자하고 순조로운 운영을 계속하여 1911년에는 동래와 강경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이 은행은 발족 당시의 발기인 또는 경영담당자들의 인적구성이 하급관료출신의 실업인과 중소지주출신의 인사들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설립 초기에는 주로 서민계 실업인 대상의 금융을 담당하였다. 이 점이 한말에 설립된 한성은행이나 대한천일은행 등이 귀족이나 거대지주 및 거상들에 의하여 설립, 운영되었던 것과는 대조가 된다.

이와 같은 특징을 지녔던 이 은행은 1912년 8월 종래의 서민출신 경영진이 퇴진하고 귀족출신의 민영휘(閔泳徽)가 은행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점차 민씨재벌이 경영권을 장악하게 됨으로써 이 은행의 성격이 서민은행에서 귀족은행으로 변질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민씨문중은행으로 변질하여 1920년 11월 같은 문중의 광업주식회사를 흡수, 합병하는 동시에 공칭자본금을 200만원으로 증자하고, 1922년 이후에는 군산·원산·함흥 등지에 지점을 확장하였다.

그 뒤 1928년 공포된 「신은행령」에 총독부당국의 민족계은행의 약화를 위한 강제합동병합정책에 따라 1930년 11월 호서은행(湖西銀行)과 대등한 조건에서 합병하고 공칭자본금 400만원으로 증액, 새로 발족하게 되었으며, 상호를 동일은행(東一銀行)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경영사연구』(고승제, 한국능률협회, 1975)
『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조기준, 대왕사, 1973)
『한국기업가사』(조기준, 박영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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