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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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섭
함인섭
인물
해방 이후 춘천공립농업중학교 교장, 중앙교육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사망 연도
1986년
본관
강원도 강릉
출생지
서울
정의
해방 이후 춘천공립농업중학교 교장, 중앙교육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내용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서울 출신이다. 원래는 충청남도 천안이 고향이지만 평생을 강원도에서 후진을 양성해왔으며, 특히 강원대학교 개교의 중추적인 구실을 하였다.

1927년서울 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동경농업대학(東京農業大學) 예과를 수료하였다. 1933년 동경농업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동경농업대학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연희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강원도와 인연을 맺은 뒤, 도내에 대학이 없음을 아쉬워하여 대학 설립에 정열을 쏟았다. 그 결과 1947년 6월 14일강원대학교의 전신인 춘천농업대학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설립 초기부터 20여만 평의 학교 부지를 확보하는 선견지명이 있었으며,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등 가난하고 헐벗은 당시의 농민에게 강한 애착심을 보였다. 강원도의 특성을 감안, 임산자원의 확보를 강조하여 국내 초유의 임과대학(林科大學)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52년 농림부장관 재직시에 8·15광복 이후 7년간 미루어졌던 토지개혁의 농지보상금을 완전히 해결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미군정시 문교부 농업교육 한인 책임자를 비롯하여, 그 뒤 국가고등고시 전형위원, 강원도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강원도 교육위원, 중앙교육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나, 결국은 학교로 돌아와 제자 양성과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1972년 퇴임 후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와 학문의 연구와 교수에 전념하였으며, 그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퇴임시까지 자기 집이 없어 제자들이 집을 마련해줄 정도로 청렴하였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장로로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으며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을 어김없이 실천한 종교인으로서도 많은 사람의 흠모를 받았다.

저서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에 있어서의 대두재배(大豆栽培) 및 육종(育種)에 관한 연구」가 있다.

상훈과 추모

교육에 헌신한 공로로 1970년과 1972년 국민훈장 동백장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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