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진신사 여래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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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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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카이진신사[海神神社]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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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카이진신사[海神神社]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내용

높이 38.2cm. 일본의 중요문화재. 쓰시마섬[對馬島]에는 한국에서 건너간 불상이 100구 이상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 건너간 불상들이 대부분 가마쿠라[鎌倉時代, 1185∼1333년] 이후에 전해진 것이다.

7·8세기의 불상들은 다소 문제가 있어 더욱 구체적인 자료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 통일신라의 것으로 확실시되는 2구의 불상이 있어 주목된다. 1구는 카이진신사의 불상이며, 또 1구는 흑뢰관음당(黑瀨觀音堂)의 불상이다.

카이진신사는 본래 팔번사(八幡社)로 1756년 이후 카이진신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팔번사의 해신(海神)을 더해 2조(組)의 모자신(母子神)을 제신(祭神)으로 섬기고 있다.

카이진신사의 수장고에는 중요문화재인 신라 불상과 그 외의 보물이 보존되어 있다. 즉 이곳에는 부근에서 출토된 토기·동검·옥·탈·목조불상 등이 있어 이 주변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카이진신사의 비불(祕佛 : 佛龕 같은 곳에 祕藏하여 남에게 보이지 아니하는 불상. 일본에서는 御神體라고 함.)로서 알려진 이 불상은 새로이 주조된 둥근 대좌(臺座) 위에 촉을 꽂고 곧게 서 있다.

머리는 몸에 비하여 약간 큰 편으로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로 되어 있다. 그리고 머리 위에 크고 뭉툭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솟아 있다.

두 손은 모두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내린 시무외인(施無畏印 :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주는 시늉의 손 모양)·여원인(與願印 :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여 드리운 모양)을 취하고 있다.

얼굴은 아직 동안(童顔)이 남아 있으며 퉁퉁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다. 예리한 각선으로 눈썹·눈·코·입이 표현되었다. 즉 커다란 호(弧 : 활 모양)를 그린 눈썹과 물결치는 두 눈, 입가의 긴장됨 등이 깊게 새겨져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으며,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치고 하반신은 상(裳 : 치마)을 걸치고 있다.

얼굴과 더불어 단단한 몸체는 중후함과 체구의 볼륨이 잘 나타나고 있어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옷주름 선이 유려하여 가슴에는 U자형의 평행선을 이루었다. 이것이 다리에서 나누어져 각각 Y자형에 가까운 호선을 새기고 있다.

대체로 통일신라 금동불상은 카이진신사상과 같이, 법의에 체구의 곡선이 투영되는 것 같은 작풍에서 점차로 법의가 형식화하고, 측면감이 편평하게 되며, 옷자락 무늬에 입체감이 결여되면서 점차 선조(線條 : 가는 선으로 쌓아 올리거나 선을 파 들어가는 조각법)에 가까워지는, 전개 양상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 상은 아직 형식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소상이지만 매우 양감이 있다. 하지만 화재 때문인지 도금은 거의 벗겨지고, 겨우 얼굴·가슴·법의의 일부만 남아 있다.

또한 잘려진 왼손의 손가락 끝 부분에는 규칙적인 작은 구멍이 있다. 이것은 손가락 끝까지 용동(鎔銅 : 구리로 주조함)이 잘 미치지 않아, 이 부분만 별주(別鑄 : 별도로 만듦)로 한 것이 화재 때 잃어버린 것 같다. 머리 뒷면과 그 몸체 뒷면에는 신라 불상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타원형의 구멍이 있다.

몸의 표현이나 세부적인 묘사는 부드럽고, 옷주름은 세련된 선조로 정리되었다. 이와 같은 양식적 요소들은 성당 양식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즉 이 불상은 선산읍 금동여래입상(국보, 1976년 지정)보다는 보다 진전된 양식으로 법의와 불신(佛身)이 조형적으로 통일감을 이루고 있다.

또한 719년(성덕왕 18년)명의 감산사(甘山寺)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1962년 지정) 계열의 불상 형식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형적인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양식으로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8세기 중엽경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東アジアの佛たち』(奈良國立博物館, 1996)
『渡來佛の旅』(久野健, 日本經濟新聞社, 1981)
「對馬と渡來佛」(大西修也, 『韓國文化』, 198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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