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국이라고도 한다. 고려 말기의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 老乞大≫에 술 깨는 국이라는 뜻의 성주탕(醒酒湯)이 나온다. 이것이 해장국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육즙에 정육을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川椒)가루와 파를 넣는다.”고 되어 있어 얼큰한 오늘날의 해장국과 그 기본이 같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해장국이 나오지 않지만 조선 말기의 풍속화나 문헌에는 이에 관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신윤복(申潤福)의 <주막도>에는 술국을 먹으러 온 한량들의 모습과 해장국이 끓고 있는 솥 앞에 앉아 국자로 국을 뜨고 있는 주모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해동죽지 海東竹枝≫에는 효종갱(曉鍾羹)이라 하였다. “광주(廣州) 성내에서는 이 국을 잘 끓인다. 배추속대·콩나물·송이버섯·표고버섯·쇠갈비·해삼·전복을 초장에 섞어 종일토록 푹 곤다. 밤에 이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는 재상집에 이른다. 국 항아리가 아직 따뜻하고 해장에 더없이 좋다.”는 해장국에 관련된 풍속이 설명되어 있어 해장국이 뇌물로도 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해장국은 지방에 따라 재료와 끓이는 방법이 달라 제각기 특유한 맛을 낸다. 서울지방의 해장국은 소의 뼈를 푹 고아서 끓인 국물에 된장을 삼삼하게 풀어 넣고 콩나물·무·배추·파 등을 넣어 끓이다가 선지를 넣고 다시 한번 푹 끓인 일종의 토장국이다. 그 맛이 씁쓸한 것이 특징이었다.
해장국의 맛이 씁쓸한 것은 해장국집에서 집집을 다니며 맛이 없어진 된장을 사서 끓였기 때문이다. 씁쓸한 맛에 우거지·쇠뼈·선지의 맛이 어우러져 오히려 독특한 맛을 내었다. 서울의 해장국은 특히 청진동의 것이 유명하였다.
고급 해장국으로는 양골국이 있다.
박종화(朴鍾和)는 “양골국은 양지머리의 살을 긁어내어고 뼈만 남은 등성이를 도끼로 찍어서 정하게 물에 씻어 밤새도록 고아 놓는다. 그 국물에 된장을 풀고 다시 우거지를 넣어서 푹 삶는다. 우거지에 양골기름이 배고 양골에 푸성귀가 어울려서 기막힌 진미가 된다. 동지 섣달 긴 추운 밤을 지내다가 새벽이 찾아와서 일을 하러 직장으로 나갈 때에 찬밥 한 덩어리를 들고 양골국 끓이는 술집으로 찾아가서 약주술 두서너 잔에 양골로 안주를 하고 밤 지낸 빈창자에 술국밥을 말아먹는 맛이란 천하의 행복을 독차지한성 싶다.”고 하며 그 맛을 찬미하였다.
전주에서는 콩나물국밥으로 해장을 한다. 조금 마른 듯한 집게손가락 길이만한 크기의 콩나물을 약한 소금물에 삶아내어 찜통에서 찐 밥과 함께 송송 썬 묵은 김치·파·마늘 및 조린 쇠고기국물, 사태살 약간을 뚝배기에 옮겨 담는다. 불 위에 얹은 뒤 콩나물 삶은 물을 붓는다. 국물이 끓으면 계란을 깨어 위에 얹어 내놓으면 식탁에서 깨소금·파·다진마늘·후추·고춧가루를 쳐 간을 새우젓 육젓으로 맞추어 먹는다.
이 때에 막걸리에 설탕 밀가루를 재워 끓인 모주를 한잔 들이키면 얼큰하고 시원한 국밥과 함께 지난밤 쓰린 속이 확 풀린다고 한다. 동해안 일대 특히 울진에서는 오징어물회국수로 해장을 한다. 이것은 연한 오징어를 국수발처럼 가늘게 썰어 양념으로 비빈 뒤 냉수를 붓고 얼음을 띄운 음식으로 다른 해장국과는 달리 찬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