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책. 필사본. 본래 3권으로 이루어진 듯하나, 상권과 중권만 전한다. 1605년(선조 38) 12월 10일부터 1607년 1월 12일까지의 기사를 날짜별로 수록했는데, 먼저 날씨와 시각을 적은 뒤 본 내용을 실었다.
상권에 1605년 12월 10일부터 다음 해 7월 26일까지의 기사가 실렸고, 중권에 1606년 9월 3일부터 1607년 1월 12일까지의 기사가 실려 있다. 해당 국정에 대한 비변사의 계, 일본 대마도(對馬島) 태수(太守)의 서계(書契), 예조의 답서(答書), 지방관의 장계 및 상소, 임금의 지시, 조정에서의 논의 기록, 승정원의 계, 사신의 파견에 따른 예물 내역을 실은 별단, 통교와 관련된 내용의 상소 등이 수록되었다.
이 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가 단절된 뒤 1609년 기유약조를 체결, 국교가 재개되기 이전의 시기여서 단절된 외교 관계를 다시 맺는 것이 공통 관심사였다.
따라서, 일본의 강화 요구, 여기에 대한 조선 정부의 대응책 마련 등에 관한 것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당시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논의 내용을 비롯,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는 문제, 일본의 정세에 대한 지방관의 보고 및 이에 대한 정부의 분석 내용 등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또한, 조선측에서 국교를 재개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일본에 요구한 왜란 때 선릉(宣陵 : 성종의 무덤)과 정릉(靖陵 : 중종의 무덤)을 파헤친 범인의 처리, 포로의 귀환과 이들에 대한 보상 문제 등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조선 중기 대일교섭 관계, 특히 임진왜란 후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기 위한 교섭 과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