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주(熊川州 :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 판적향(板積鄕)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름이 선(善)이고 자(字)는 반길(潘吉)인데, 천성이 온화하고 순량하여 향리에서 추앙을 받았다. 향덕도 역시 효순(孝順)으로 당시 세상에서 칭찬을 받았다.
755년(경덕왕 14)에 흉년이 들고 유행병까지 겹치게 되었다. 이 때 향덕의 부모는 굶주리고 병들게 되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는 종기가 나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향덕은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에게 먹이고, 어머니의 종기가 난 곳을 빨아내어 편안하게 하였다. 이러한 향덕의 효행 소식이 주(州)를 통하여 경덕왕에게 알려지자 경덕왕은 향덕에게 벼 300곡(斛, 즉 3,000斗), 집 한채와 구분전(口分田) 약간을 내리고 비석을 세워 그의 효행을 크게 알리게 하였다.
향덕의 효행은 고려시대에는 물론 조선 후기에까지 전승되었다. 그리하여 1741년(영조 17)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조영국(趙榮國)이 찬한 ‘신라효자향덕정려비(新羅孝子向德旌閭碑)’가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