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국필(國弼), 호는 상무헌(尙武軒). 할아버지는 직장 허승립(許承岦)이다.
일찍부터 학문에 힘써 김상용(金尙容)·김상헌(金尙憲)으로부터 배우다가 붓을 던지고 병서를 탐독하고 스스로 ‘상무헌’이라 일컬었다.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고, 오위도총부도사·겸훈련원부정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이괄(李适)의 난 때 수문장 겸 금군별장이 되어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고, 절충장군에 올라 부호군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제(從弟) 허복량(許復良)과 함께 민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병마절도사 민영(閔栐)의 진에 들어가 광주쌍령(廣州雙嶺)에서 많은 적병을 죽이고 전사하였다. 1652년(효종 3)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대구의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상무헌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