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진(吳泳鎭)의 후기 장막 희곡. 18세기에 크게 성행하였던 실학사상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바탕 위에서 정치의 고루성과 무기력한 양반사회, 위학(爲學) 등을 비판한 박지원(朴趾源)의 단편소설 <허생전>·<양반전>, 그리고 채만식(蔡萬植)의 소설 <허생전>을 골격으로 창작된 이 작품은 <맹진사댁 경사>와 함께 대표작에 속한다.
그러나 박지원과 그가 살았던 시대, 오영진과 그가 처하였던 현대가 다른 것처럼 두 사람의 사상적 배경도 크게 차이가 나서 흥미롭다. 즉, 박지원은 그 시대에서는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봉건체제의 모순을 지적한 데 반하여, 오영진은 보수적인 사회관을 지니고 현실정치를 비판하였다.
따라서 오영진의 <허생전>은 박지원의 <허생전>만큼 시대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영진은 허생이라는 인물을 현대화하여 1960년대의 권력구조를 매판(買辦:개인 이익을 위해 외국 자본에 붙어 자기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일)정치로 몰아서 산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1960년대의 상황을 18세기와 비교하여 명나라를 오늘의 일본에 비유하고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난 또 하나의 사상은 처녀작 <배뱅이굿>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허무주의이며, 다른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해학성이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으며, 판소리투의 운문성도 돋보인다.
전작(前作) <모자이크게임>의 인형극적인 간결함, 함축성 있는 대사와 빠른 속도감에 비하여 <허생전>에서 보이는 것은 창으로 부를 수도 있도록 구성한 리드미컬한 대사와 범시대적 원형질이 보인다.
즉 전통 예술의 여러 측면을 수용하여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을 구사해 본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소재에서 뿐만 아니라 구성·문체·인물 등에 있어서 다양한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