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응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대사헌, 공안부윤, 개성유후사유휴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경혜, 景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11년(태종 11)
본관
양천(陽川)
주요 관직
공안부윤(恭安府尹)|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
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공안부윤, 개성유후사유휴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양천(陽川). 아버지는 개성윤 허교(許喬)이다. 1371년(공민왕 20)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낭사(郎舍)가 되었다.

1391년(공양왕 3) 시폐를 들어 배불론(排佛論)을 주장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다. 그 뒤 좌상시(左常侍)에 보직되어 이성계(李成桂)의 신진세력에 가담하여 시폐를 혁신할 것과 전제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조선이 개국된 뒤 여러 요직을 거쳐 태종초에는 대사헌이 되어 배불정책을 강경하게 주장하였고, 부녀의 정절을 중시하여 과부의 개가(改家)를 금지하자고 주장하였다.

1405년(태종 5) 공안부윤(恭安府尹)으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뒤에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에 이르러 은퇴하였다. 시호는 경혜(景惠)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태종실록(太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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