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회(景晦). 허광(許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허순(許淳)이고, 아버지는 결성현감 허운(許雲)이며, 어머니는 감찰 이구정(李龜楨)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이 되고,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감찰·형조좌랑·성균관직강·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였다. 이어 경상·평안도도사가 되었을 때 의령현감으로 있던 정인홍(鄭仁弘)이 영송(迎送)에 무례하므로 그가 그 주관한 아전을 벌주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 뒤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과 관련이 있다 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도사로 임금을 모시고 의주로 갔는데 왕을 호종한 공으로 절도사가 되었다.
성을 나누어 지켰는데 그는 왕실의 신주(神主)를 관리하였으며, 얼마 뒤 정주목사가 되었다. 1615년 죽주부사(竹州府使)로 임명되었다가 나이가 70이라 하여 체차되었고, 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멀리하였다. 임진왜란의 공으로 공신에 녹훈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삭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