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주(延州). 자는 문가(文可), 호는 남강(南岡). 아버지는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를 지낸 현성관(玄聖寬)이며, 어머니는 아산장씨(牙山蔣氏)로 장학로(蔣學魯)의 딸이다.
10세에 이미 시를 지었으며, 의서에도 통달하였다. 1902년 수륜원주사(水輪院主事)로 임명된 뒤 태의원전의(太醫院典醫)·승의랑(承議郎)을 역임하였다. 용인군수로 있을 때에는 선정을 베풀어 불망각(不忘閣)이 세워지고, 현찬봉의 공덕을 찬양한 「만인산송(萬人傘頌)」이 만들어졌으며, 치적을 기록한 목비(木碑)가 39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1906년에는 곤양군수(昆陽郡守)로 전보되었다. 민영환(閔泳煥)·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 등 순국충혼에 제문을 올린 일과 상소문·서간문 등에 우국충정의 심원함이 잘 나타나 있다. 저서로는 『남강집(南岡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