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598∼599. 이름은 계(季). 헌왕(獻王)이라고도 한다. 성명왕, 즉 성왕의 둘째아들로서 형인 위덕왕이 죽은 뒤 왕위를 계승하였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 왕력에는 혜왕은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위덕왕의 이름을 명으로 잘못 정리한 데 따른 착오로 보인다. 혜왕의 맏아들은 제29대 법왕이다.
혜왕의 치세는 국세가 극도로 약화되고 사회내부의 모순이 심화되고 있던 때로 보인다. 전 시대에 귀족들의 활동무대이자 경제적인 원천을 이루었던 황해 연안의 무역기지들은 고구려의 진출로 일차적인 큰 타격을 받았고, 그 뒤 진흥왕 당시의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여 황해로 진출하게 되면서는 해상활동은 신라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는 중국대륙이 수나라에 의하여 통일되자 중국 본토에 잔존하여 있던 기지들마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한편, 남쪽 일본열도 역시 왜(倭)의 국가체제 성립으로 백제의 영향권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렇게 밖의 활동무대를 상실한 귀족들은 백제 내부의 한정된 경제적 원천을 차지하려고 심한 내분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혜왕의 재위기간이 1년에 불과하고, 다음 왕인 법왕의 재위기간도 1년에 불과하다. 이처럼 왕의 단명한 상태가 거듭되는 것은 당시 백제의 정세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