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계통(季通), 호는 무적당(無適堂). 황해도관찰사 홍춘경(洪春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일민(洪逸民)이고, 아버지는 진사 홍영필(洪永弼)이며, 어머니는 조수(趙琇)의 딸이다. 관찰사 명원(命元)의 동생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2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이 되었으며, 호조낭관·북청판관·공조정랑을 거쳐 1618년 종성판관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광해군의 난정에 벼슬에 뜻이 없었으나 1619년 고부군수가 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정언이 되어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로 피난하였다.
1633년(인조 11) 형조참의에 오르고, 다음해 성절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사사로이 부총병 정룡(程龍)을 만났다 하여 귀국 후 파면되었다가 1636년 다시 승문원부제조가 되었다.
이 해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난하여 나라의 형세를 한탄하다가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분신자살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의열(義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