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예산군, 서쪽은 황해, 남쪽은 청양군 · 보령시, 북쪽은 서산시 · 예산군과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6°27'∼126°46', 북위 36°28'∼36°40'이다. 면적은 443.97㎢이고, 인구는 10만 1530명 (2017년 기준)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8개 면, 340개 행정리(150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 있다.
지세는 동 · 남 · 북쪽이 모두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은 천수만(淺水灣)에 면하고 있다. 동쪽에는 봉수산(鳳首山, 484m) · 초롱산(340m), 남쪽에는 오서산(烏棲山, 791m) · 아차산(424m), 북쪽에는 삼준산(三峻山, 490m) · 백월산(白月山, 394m) · 홍동산(弘東山, 310m) · 용봉산(龍鳳山, 381m) 등이 솟아 있고, 이들 산악과 그 여맥이 군내 각처에 뻗어 있어 대부분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용봉산에서 발원한 금마천(金馬川)이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군의 북동부를 북류하며, 와룡천(臥龍川)이 북서부를 서류해 천수만으로 흘러든다. 또한 광천천(廣川川)이 남부를 서류하고, 금리천(錦里川)이 남부를 남류해 각각 천수만에 유입된다.
금마천 유역에는 넓은 홍성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 밖의 하천유역에도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군의 주요 농산물생산지가 되고 있다. 천수만 연안은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이가 커서 간석지로 이용된다.
홍성을 포함한 충청남도 서북부지역은 지체구조상 크고 작은 단층들이 발달되어 있어 우리나라 4대 강진지역(强震地域) 중의 하나이다. 역사상 이 지역에서 감지된 지진횟수는 모두 48회에 달하며, 1978년에는 홍성군청을 중심으로 진도 8과 진원심도 10㎞에 이르는 강진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하나 겨울철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아지기도 한다. 연평균 기온 11.7℃, 1월 평균기온 -3.6℃, 8월 평균기온 26.1℃이며, 연 강수량은 1,219.1㎜이다.
광천읍 대평리와 홍동면 등지에 북방식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과 사로국(駟盧國)이 이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지금의 홍성읍 지역에 사시량현(沙尸良縣), 결성면 지역에 결기군(結己郡), 장곡면 지역에 사평현(沙平縣)이 각각 두어졌다.
그 뒤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 사시량현을 신평현(新平縣)으로, 결기군을 결성군(潔城郡)으로, 사평현을 신량현(新良縣)으로 고치고 신평현을 혜성군(槥城郡)에, 신량현을 결성군에 각각 소속시켜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한편, 지금의 홍주읍성(洪州邑城)은 삼국시대 이후 읍터로서 큰 변동이 없었으며, 현존하는 것은 조선 초의 축성양식을 보여 주는 축성물로서 더욱 가치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그 둘레가 533보, 높이가 2척으로 성 안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사철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995년(성종 14)에 운주(運州)라 하고 도단련사(都團練使)를 파견했으며, 1012년(현종 3)에는 도단련사를 폐지하고 대신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그 뒤 홍주(洪州)로 개칭했으나, 그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양광도(楊廣道)에 속했고, 혜성 · 대흥(大興) · 결성(結城)의 3개 군과 고구(高丘) · 보령 · 흥양(興陽) · 청양 · 신평 · 덕풍(德豊) · 이산(伊山) · 당진(唐津) · 여미(餘美) · 여양(驪陽) · 정해(貞海)의 11개 현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1356년(공민왕 5) 왕사(王師) 보우(普愚)의 내향(內鄕)이라 해 홍주목(洪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68년에 홍주로 복구되었고, 1371년에 다시 홍주목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말의 명장 최영이 지금의 홍북읍 노은리에서 출생했으며, 홍성읍의 금마총은 그가 유년시절에 무술을 연마했던 고사와 관계 깊은 말무덤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홍주목이라 하였다. 세조 때 진(鎭)을 설치했으며, 1530년(중종 25)에는 홍주부(洪州府)를 두고 관찰사를 파견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 현종 때 홍양현(洪陽縣)으로 강등되었다가 곧 복구되었고, 순조 때에도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복구되었다.
세조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이 지금의 홍북읍 노은리에서 출생했으며, 뒤에 그를 비롯한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1668년(현종 9)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지었다. 또한 1676년(숙종 2)에는 사우를 건립해 1692년에 노은서원(魯恩書院)이라 사액되었다.
이 밖에 호론(湖論)의 주창자로 널리 알려진 한원진(韓元震)은 결성의 구기(舊基)에서 학문에 전념해 『주서동이고(朱書同異考)』 ·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등을 저술했으며, 복한(卜僩)은 금마면 출신으로 그 효행이 명나라에까지 알려졌다.
1870년(고종 7) 목사 한응필(韓應弼)에 의해 조양문(朝陽門)이 건조되고, 그 판액은 대원군의 친필로 제작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가 23부제로 개편됨에 따라 홍주부로 승격되어 인근의 22개 군을 관할하였다.
1896년에는 13도제의 실시에 따라 충청남도 홍주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홍주군과 결성군을 통합하고 보령군의 일부를 편입해 홍성군이라 하였다. 그 뒤 1941년과 1942년에 홍주면(洪州面)과 광천면(廣川面)이 각각 홍성읍, 광천읍으로 승격되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승려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로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을 제창한 한용운(韓龍雲), 독립운동가로서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金佐鎭) 등이 있다. 또한 홍주 지역에서 항일의병이 1896년과 1906년 2차에 걸쳐 전개되었는데, 1차 의병의 대표적 인물로는 김복한(金福漢) · 이설(李偰) · 안병찬(安炳瓚) 등이 있다.
2차 의병은 전 참판 민종식(閔宗植)을 대장으로 추대해 전개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홍주성전투가 특히 유명하며, 이 전투에서 수백 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민들이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1949년 홍성읍 대교리에 구백의총(九百義塚)을 세웠다. 한편, 홍주의병에 종군한 임한주(林翰周)는 『홍양기사(洪陽記事)』를 써서 의병의 항일투쟁기록을 후세에 남겼다.
1978년 10월 7일 홍성군청을 중심으로 강한 지진이 발생해 가옥 파손과 지면상의 균열 등 피해를 입었다. 1983년 2월 15일 결성면 와리와 서산군 고북면 대사리가 갈산면에, 결성면 중리가 서부면에, 홍북면(현 홍북읍) 내법리와 홍동면 구룡리가 홍성읍에, 홍동면 월림 · 대평 · 운룡리가 광천읍에 편입되었고, 1989년 1월 1일에는 태안군 안면읍 죽도리가 서부면에 편입되었다.
선사시대 유물 · 유적으로 구항면 태봉리의 홍성 지석묘(충청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를 비롯해 광천읍 대평리, 결성면 금곡리, 은하면 학산리, 홍북읍 상하리의 지석묘, 구항면 황곡리의 입석 등이 있고, 홍동면 팔괘리에서는 석검 · 무문토기 · 연질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산성으로는 조양문(朝陽門) · 아문(衙門) 등이 있는 홍성읍 오관리의 홍주읍성(사적, 1972년 지정)을 비롯해 해풍현 성지(海豊縣城址) · 결성현성지(結城縣城址) · 고구현 성지(高丘縣城址)(驪陽縣城址) · 금곡성지(琴谷城址) · 송암산성(松巖山城) · 내담산성(內淡山城) · 신금성(神琴城) · 만경산성(萬頃山城) · 학성산성(鶴聲山城) · 시루봉 산성 · 홍성 신금성 · 홍성 장곡산성 등이 있고, 봉수대로는 청룡산봉수대 · 고구봉수대 등이 있다. 홍성 신금성은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홍성 장곡산성은 1998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불교 유산은 결성면 무량리의 홍성 고산사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 홍성읍 오관리의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보물, 1971년 지정), 소향리의 광경사지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내법리의 광경사지 석불좌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대교리 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고, 홍북읍의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보물, 1963년 지정) · 홍성 상하리 미륵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신경리의 용봉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 · 용봉사 부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용봉사 마애불 · 용봉사지 석조(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로 일괄 지정된 마애(碼磑: 맷돌) · 석구(石臼: 돌절구) · 석조(石槽: 큰 돌그릇), 구항면 지정리의 홍성 구절암 마애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8년 지정) 등이 있다. 용봉사 마애불은 1985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홍성읍 대교리에 홍주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결성면 읍내리에 결성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과 홍주아문의 동헌이었던 안회당(安懷堂) · 결성동헌(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등이 있고, 1676년(숙종 2) 사육신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홍북읍 노은리의 노은서원(魯恩書院), 1706년에 세운 홍성읍 대교리의 혜학서원지(惠學書院址), 순조 때 한원진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부면 양곡리의 양곡사(暘谷祠), 1906년 병오의병 때 왜병과 싸우다 순국한 우국지사를 기리는 홍성읍 대교리의 창의사(彰義祠), 항일의병장 김복한의 영정을 모신 서부면 이호리의 추양사(秋陽祠) 등이 있다.
홍동면 신기리에 전운상 영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이 있다. 형산리에는 용대기가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 구항면 지정리의 홍성 연산서씨 석보(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 등이 있다. 용대기는 1982년 충청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장곡면 산성리의 홍성 사운 고택, 흥북면 노은리의 홍성 노은리 고택, 갈산면 상촌리의 김우열 가옥(충청남도 민속문화재, 1985년 지정) · 전용일 가옥(충청남도 민속문화재,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홍성 사운 고택은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홍성 노은리 고택은 1996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와 능묘로는 홍성읍 대교리의 홍주의사총(사적, 2001년 지정),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이광윤의 묘소인 장곡면 옥계리의 이광윤 묘(충청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 서부면 판교리의 홍성 임득의장군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홍북읍 노은리의 성삼문선생 유허지(충청남도 기념물, 1973년 지정) · 성삼문선생 유허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를 비롯해 1596년(선조 29)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홍주목사 홍가신의 공적비인 홍성읍 대교리의 홍가신청난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옥암리의 홍주성 수성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오관리의 김좌진장군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구항면 오봉리의 대원군 척화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금마면 신곡리의 복한효자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서부면 이호리의 김복한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한용운 묘 등이 있다. 이 밖에 장곡면 월계리의 용못 암각문군(巖刻文群)이 있다.
결성면 성곡리의 한용운선생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 갈산면 행산리의 김좌진장군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 등이 있다. 이외에도 광천읍 신진리의 보부상 유품(국가민속문화재, 1976년 지정)이 있다.
갈산면 동성리에는 옹기장, 광천읍 신진리에는 홍성댕댕이장, 서부면 판교리에는 홍성 수룡동 당제, 홍성읍 오관리에는 지승제조가 전승되고 있으며 결성면에는 결성농요가 있다. 옹기장은 1990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홍성댕댕이장은 2000년, 홍성 수룡동 당제는 2003년, 지승제조는 1986년, 결성농요는 1996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노거수로는 홍성읍 오관리의 느티나무, 구항면 청광리의 은행나무, 광천읍 소암리의 느티나무, 금마면 장성리의 은행나무 등이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결성향교(結城鄕校)와 홍주향교(洪州鄕校)가 있다. 결성면 읍내리에 있는 결성향교는 1010년(현종 1)에 창건했으며, 홍성읍 대교리에 있는 홍주향교는 1871년(고종 8)에 창건하였다.
이 밖에 홍북읍 노은리의 노은서원은 1676년(숙종 2)에 이량(李凉)과 유림이 창건해 사육신을 추모하다가 고종 때 철폐되었으며, 그 뒤 유림이 노은단(魯恩壇)을 세워 매년 11월 추모제를 지낸다. 홍성읍 대교리의 혜학서원은 1706년에 건립해 이세구(李世龜)를 향사하다가 고종 때 철폐되었으며, 황강서원(黃岡書院)은 1726년(영조 2)에 건립되었으나 역시 고종 때 철폐되었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0년에 홍성읍에 설립된 사립 영명학교(永明學校)가 최초인데 1907년 홍주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1907년에는 김좌진의 교육구국이념에 의한 호명학교(湖明學校)가 설립되었으나 뒤에 폐교되었다.
또한 경술국치를 전후해 윤상려(尹相呂)가 홍성읍에 동명학교(東明學校), 결성면에 보광학교(普光學校)를 설립했으며, 서승태(徐承台)가 광천읍에 덕명학교(德明學校)를 설립했으나 일제에 의해 보광학교는 1912년 결성공립보통학교로, 덕명학교는 1915년 덕명공립보통학교로 강제 개편되었다.
그 뒤 점차 각 급 학교들이 증가해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1개교,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 8개교, 혜전대학과 청운대학교, 한국폴리텍Ⅳ 홍성대학이 있다.
이 밖에 홍성군립도서관이 있어 지방교육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1954년에 개원한 홍성문화원은 홍주문화제(洪州文化祭)를 거행하는 등 각종 문화 · 예술행사를 주관해 향토문화 발전과 선양에 힘쓰고 있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용대기놀이와 볏가릿대놀이를 들 수 있다. 용대기놀이는 결성면 형산리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놀이인데 이 마을에는 현재 약 170년 전에 제작된 용대기가 옛 모습 그대로 전해 오고 있다.
용대기놀이는 두 마을 간에 선후배의 순위를 가리고자 기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먼저 갑마을의 농부들이 용(龍)이 그려진 용대기와 청색의 영기(令旗)를 앞세우고 농악대를 따라 놀이장소에 입장하고 농악에 맞추어 농요를 부르며 모심기 · 논매기 등의 동작을 펼친다.
이들이 일을 끝내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쉴 때, 을마을의 용대기가 나타나 의기양양하게 갑마을의 용대기 앞을 지나가려 하는데, 여기서 양측의 좌상이 용대기의 선후배를 가리는 다툼을 벌이고, 이어 두 마을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용대기를 넘어뜨리는 기싸움을 펼친다. 마지막에는 선후배를 판정해줄 선생용대기를 모셔다가 판정을 받아 형과 아우의 관계를 정하고, 이들은 의리를 돈독히 하는 놀이를 한판 벌이며 하루를 즐긴다.
볏가릿대놀이는 마을의 부유한 집 마당에 송목(松木)을 베어다 세우고 짚을 묶어 그 위에 벼 · 조 · 기장 등의 이삭을 꽂아 놓고 그 해의 풍농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이 밖에도 윷놀이 · 널뛰기 · 쥐불놀이 · 연날리기 · 줄다리기 · 그네뛰기 · 씨름 · 닭잡기놀이 등이 있다.
광천읍 광천리 원동(元洞)마을의 서낭제, 홍북읍 용봉산의 산신제, 서부면 남당리의 당산제 등이 유명하다. 원동의 서낭제는 광천읍 원동시장에서 상인들의 상업 번창과 액운 제거, 그리고 어민들의 안전한 항해와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거행된다. 제일은 매년 정월 중 첫말날[上午日]을 택하며 제를 지내기 3일 전부터 제당에 금줄을 걸고 통로의 좌우 양쪽에 세 무더기씩 황토를 놓아 부정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용봉산의 산신제는 산중턱에 위치한 산신당에서 정월 중 길일을 택해 거행하고, 남당리의 당산제는 마을입구에서 서쪽에 위치한 제당에서 정초에 거행하는데 제의방법은 다른 지역의 것과 대동소이하다.
이 고장에는 「고륜바위[故崙巖]전설」 · 「구룡산(九龍山)전설」 · 「처녀바위전설」 등의 지명설화가 다수 전해오고 있다. 광천읍 담산리에서 남동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오서산이 있고, 이 산중턱에 열 길쯤 되는, 깎아지른 듯한 검은 바위가 있다.
아득한 옛날 담산리에 윤천륜(尹天崙)이라는 총각이 살았는데 어느 날 그가 구름을 타고 내려온 선녀를 만나 그녀와 함께 이 바위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해 바위이름을 고륜바위라 했다고 전한다.
차령산맥의 한 줄기로 봉수산과 초롱산 사이에 구룡산이 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부하를 거느리고 이곳에 당도해 산을 두루 살펴보니 산세가 너무 좋아, 앞으로 이곳에서 훌륭한 장수가 태어날 것이 분명하므로 산의 명혈을 끊도록 명하였다.
그런데 한 곳을 끊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남은 기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아 자꾸 혈맥을 끊다 보니 아홉 군데나 끊어 놓게 되었다. 이후 구룡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끊긴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금마면 봉서리에 있는 처녀바위에는 장자못계의 유래담이 전한다. 옛날 어느 인색한 부잣집에 처녀 종이 살았는데,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므로 주인마님에게 이를 고하였다.
그런데 주인마님이 뒤뜰에 있는 모래를 퍼다주라고 해 처녀 종은 할 수 없이 모래를 퍼다주었다. 스님은 모르는 척 받아 넣고서, 이곳은 천벌을 받을 터이니 내일 밤 봉수산으로 올라가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이른 뒤 사라졌다.
다음 날 저녁 처녀 종은 스님의 말대로 봉수산에 올랐는데 중턱쯤 이르자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지며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너무 무서워 스님의 말을 잊고 그만 뒤를 돌아보는 순간 꽝 하는 벽력과 함께 처녀 종은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봉수산 기슭에는 처녀바위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애처롭게 서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방에는 토속민요로 노작요(勞作謠)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노작요에는 농업요가 매우 많고 상례요(喪禮謠) · 역사요(役事謠) 등이 보인다. 이들 민요는 선소리꾼이 메기는 앞소리와 일꾼들이 함께 부르는 뒷소리로 되어 있다.
앞소리는 선소리꾼이 임의로 메기기도 하지만 한 마을 내에서는 거의 비슷하다. 뒷소리는 일정한 사설을 가지는데, 별 뜻이 없는 여음(餘音)으로 된 것이 많다. 대부분 노작요는 동작과 리듬의 소리가 맞는데, 농악에 맞추어 또는 북소리에 맞추어 부르기도 한다.
노작요 중 모내기노래와 김매기노래의 몇 가지 예를 소개한다. “에 · 이여라 사지요/우리가 살면은 몇백년이나 살아 살아 생전에 멋대로 노세/에 · 이여라 사지요/대보름 동서간 우리네 농부들 열심히 일하세/에 · 이여라 사지요/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을 보고 웃지마소/에 · 이여라 사지요.”(홍동면 운월리 모내기노래)
“이 배미를 빨리 심고 장고 배미로 넘어가세/어럴럴럴 상사듸여/이산저산 양산인데 울고간다고 곡산이라네/어럴럴럴 상사듸여.”(홍북읍 상하리 모내기노래) “산아 산아 수양산아 눈비맞아 백두산아/산 설고 물 설은 이 자리에 오늘일이 어렵구나/에에 · 야 어어 · 산이로다/산에 올라 아질테니 이름이 좋아서 산이로다/에헤 · 헤야 어럴화 어럴화. 둥개둥개둥개 내사랑아/간다 간다 나는 간다. 두리둥실 내가 돌아간다/에헤 · 헤야 에헤 · 헤야 어럴화 둥개둥개 내사랑아.”(서부면 남당리 모내기노래)
이러한 노작요 이외에 상엿소리[香頭歌] · 회다지소리(달고소리) · 가래질노래 및 타작할 때 소리 등의 민요도 있다. 비교적 사설이 간단한 가래질노래와 타작할 때 소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기둥차 가래호/어기어차 가래호/이밥 저밥 뚝뚝 떠서 단단히 늘어 받아들 보세/어기어차 가래호.”(운월리 가래질소리) “에이야호 에이야호/청춘한날에 에이야호/할일도 많더라 에이야 데이야호/에이어라 나간다.”(운월리 타작할 때 소리)
이 군은 전체 인구의 약 46.5%가 농업에 종사하며, 총경지면적은 161.16㎢로 논이 99.97㎢, 밭이 61.19㎢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맥류 · 잡곡 · 고구마 · 담배 등이며, 이 밖에 마늘 · 참깨 · 무 · 배추와 시설재배에 의한 딸기의 생산량이 많고, 예산에 인접해 사과과수원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돼지 · 닭의 사육 이외에 초지를 이용한 한우사육단지를 조성해 소득증대에 힘쓰고 있다. 또한 군내에는 홍동(洪東) · 홍양(洪陽) · 가송(佳松) · 광천(廣川) 등의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수산업은 미미해 새우 · 조개 등이 잡히며, 해안지대에서는 천일제염 · 김양식 등이 이루어지고, 광천읍 옹암리에서는 새우젓을 많이 생산한다. 광업은 광천읍을 중심으로 석면이 생산되며, 그 밖에 금 · 은 · 중석 등이 산출되나 석면을 제외하고는 부진한 상태이다. 광공업 사업체수는 82개로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상업활동은 홍성읍내의 조양문, 버스터미널, 김좌진장군상에 이르는 간선도로변에 상가가 발달해 있으며, 광천읍의 역전 일대에도 상가가 발달해 있다. 홍성군내에는 홍성장 · 광천장 · 갈산장 등 3개의 정기시장이 열린다. 홍성장은 1·6일에, 광천장은 4·9일에, 갈산장은 3·8일에 각각 열린다.
교통은 홍성읍을 중심으로 예산∼보령 간의 21번 국도와 청양∼서산 간의 29번 국도가 관통하고, 홍성읍에서 덕산으로 향하는 609번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어 편리하다. 또한 광천읍을 중심으로 예산∼보령 간의 21번 국도와 청양군 장곡면과 홍성군 서부면을 잇는 614번 지방도가 관통하고 있어 홍성읍과 광천읍이 군내의 교통중심지를 이룬다. 서해안고속국도는 서산시 고북면에서 진입해 군내의 갈산 · 결성 · 은하면 등을 거치고, 갈산면에 홍성인터체인지, 광천읍에 인접한 보령시 천북면에 광천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있어서 수도권 및 호남권으로의 접근도가 더욱 증대되고 있다.
한편, 장항선 철도가 군의 중앙부를 관통하면서 화양 · 홍성 · 신성 · 광천 등 4개의 요역이 설치되어 철도교통의 요지를 형성한다.
해상교통은 과거 광천읍의 옹암포항이 새우젓 등 각종 물자의 출입으로 번성했으나, 육지에서 유입된 토사로 매몰되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폐항이 되었다.
이 군은 민족자존과 구국독립에 앞장섰던 애국선열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충절의 고장으로 문화적 관광자원이 많은 곳이다. 군내에는 4개의 관광코스가 있다. 첫째는 홍성읍 오관리의 홍주성에서 3·1독립운동기념비 · 조양문을 거쳐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 · 홍주성 수성비 · 김좌진장군상 · 한용운선사상과 대교리의 구백의총으로 이어지는 읍내코스이며, 둘째는 홍성읍에서 구항면 오봉리의 대원군 척화비를 거쳐 갈산면 행산리의 김좌진장군 생가 터에 이르는 길이다.
셋째는 홍성읍에서 광천읍의 옹암포항 · 새우젓독배를 거쳐 결성면 읍내리의 결성향교 · 석당산성 · 결성동헌, 그리고 무량리의 고산사에 이르는 길이며, 넷째는 홍성읍에서 홍북읍 노은리의 노은단, 신경리의 용봉사에 이르는 길이다. 한편 매년 가을에 열리는 홍주문화제와 홍성 · 광천읍의 5일장도 볼 만한 구경거리이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35.03㎢, 인구 1만 25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신진리이다. 본래 결성군 지역으로 광천마을의 이름을 따서 광천면이라 해 시곡 · 가곡 · 장석 등 2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암면의 일부와 홍주군 궁경면의 일부, 번천면의 일부, 오시면의 일부를 병합해 홍성군에 병합, 1942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에 홍동면 월림 · 대평 · 운룡리가 편입되었다.
읍의 동남쪽에 차령산맥의 지맥인 오서산이 솟아 있어 홍성군 · 청양군 · 보령시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남쪽에는 아차산, 북서쪽에는 지기산(智基山, 321m) 등이 솟아 있고 광천천이 읍의 중앙을 흘러 천수만으로 흘러들며, 유역에 내죽(內竹) · 상정(湘井) 등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하천유역의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오서산에는 10여 개의 목장이 개발되어 목축업에도 힘쓰고 있다. 1960년대까지도 옹암리 옹암포는 어선이 많이 들어와 호황을 누렸으나 지금은 갯골이 좁아져 어선이 들어오지 못한다.
옹암리의 독배새우젓은 광천새우젓으로 예로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연생산량이 약 1,500톤으로 전국 공급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지금도 옹암리의 가촌에는 독배들이 늘어서 있으며, 옹암포구의 도로변에는 독배저장고인 토굴이 설치되어 있다. 옹암리 일대의 구도로변에 발달했던 가촌은 지금은 쇠퇴하였다. 최근에는 읍내에서 새우젓축제가 열리고 있다.
상정리에서 석면이 많이 생산되며, 신진리에 도자기공장이 있다. 상업은 광천역과 버스터미널 일대의 가로변에 입지한 각종 서비스기능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군내의 홍성읍에 비해 규모가 크지 못하다. 신진리 일대에서 4일과 9일에 열리는 5일장은 읍내의 상업을 주기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구항면과 보령시 청소면으로 통하는 21번 국도, 장곡면과 은하면으로 향하는 614번 지방도 등이 교차해 지나고, 장항선 철도에 신성역과 광천역이 설치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대평리에 지석묘, 당산리 오서산에 정암사(淨巖寺)가 있다.
신진리(新津里) · 광천리(廣川里) · 담산리(淡山里) · 가정리(佳亭里) · 내죽리(內竹里) · 소암리(所巖里) · 매현리(梅峴里) · 벽계리(碧溪里) · 상정리(湘井里) · 옹암리(甕巖里) · 월림리(月林里) · 대평리(大坪里) · 운룡리(雲龍里)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30.48㎢, 인구 4만 229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오관리이다. 본래 홍주군 지역으로 읍내의 북쪽이 되어 주북면(州北面)이라 해 북사 · 남관 · 주동 등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주남면(州南面)과 번천면(番川面) 세천리(世川里) · 종현리(鍾縣里) 일부를 병합해 홍주면으로 개칭하고 홍성군에 편입되었다. 1941년 홍성읍으로 개칭, 승격되었으며, 1983년 홍북면(현 홍북읍) 내법리와 홍동면 구룡리가 편입되었다.
남서부에 남산, 북서부에 백월산이 솟아 있어 서부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밖의 지역은 대부분 100m 이하의 소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금마천의 여러 지류들이 읍내를 흘러 동부 경계를 이루는 금마천에 합류하며, 이들 하천유역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와 과수재배가 활발하며, 주변지역의 농산물 집산지가 되고 있다. 가축사육도 활발하며, 특히 월산리에는 대규모의 양계단지가 있다. 상업은 군청에서부터 읍사무소, 조양문, 버스터미널, 김좌진장군상 등을 거쳐 홍성역에 이르는 일대의 가로변에 입지한 많은 서비스기능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상업기능체들은 홍성읍과 전체 면지역을 배후지로 한다.
1일과 6일에 읍내 곳곳에서 열리는 5일장은 상설시장의 기능을 보완하면서 홍성읍의 상업적 중심성을 주기적으로 더욱 높이고 있다. 금마면과 구항면으로 통하는 21번 국도, 홍동면과 구항면으로 통하는 29번 국도 등이 교차해 지나고, 장항선 철도가 지나면서 홍성역이 설치되어 있어 교통이 아주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오관리에 홍주성 · 홍주아문 · 조양문 · 안회당 · 여하정(余何亭) 및 갑오동학란 때 공을 세운 한기경을 기리기 위한 한기경 충렬비(韓基慶忠烈碑)가 있으며, 대교리에 혜학서원지와 홍양청란비(洪陽淸亂碑) · 홍주향교 · 구백의총 · 창의사 · 석불입상 ·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가 있다. 그 밖에 남장리에 충령사(忠靈祠), 소향리에 광경사지 삼층석탑, 월산리 백월산에 홍주 정난사와 산혜암(山惠庵) · 해풍현 성지 등이 있다.
오관리(五官里) · 대교리(大校里) · 소향리(昭香里) · 월산리(月山里) · 남장리(南長里) · 학계리(鶴鷄里) · 신성리(新城里) · 송월리(松月里) · 고암리(古巖里) · 내법리(內法里) · 옥암리(玉巖里) · 구룡리(龜龍里)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35㎢, 인구 3,87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촌리이다. 본래 홍주군 고남면(高南面)이었으나 고남상도면(高南上道面)과 고남하도면으로 분할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남상도면 산직리(山直里)가 용천면(用川面)에 편입되고, 덕산군(德山郡) 나박소면(羅朴所面) 일부와 해미군(海美郡) 고북면(高北面) 일부가 병합되어 고도면(高道面)이 되었다가 1942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으며, 1983년에 결성면 와리와 서산군 고북면 대사리가 편입되었다.
면의 남부에 삼불산(三佛山, 164m), 중앙부에 결봉산(鴂峰山, 202m), 북부에 삼준산 등이 솟아 있으나, 북동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100m 이하의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운곡천(雲谷川)이 면의 중앙을 남류해 와룡천에 합류하며, 와룡천은 면의 남부를 서류해 천수만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비옥한 충적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 논농사가 이루어지며 양봉도 활발하다. 상업은 상촌리 국도변에 짧게 형성되어 있는 가촌에 입지한 각종 기능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매우 영세하며, 상촌리 가촌 일대에서 3일과 8일에 열리는 5일장이 주기적으로 상업을 활성화시키고 있으나, 홍성읍의 상업적 중심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갈산장도 점차 쇠퇴하고 있다.
구항면과 서산시 고북면으로 향하는 29번 국도, 서부면으로 향하는 614번 지방도, 예산군 덕산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특히 29번 국도상의 상촌리에서 분기된 614번 지방도의 일부가 서부면의 지방도를 거쳐 천수만 간척둑 도로와 연결됨으로써 상촌리는 태안군 안면읍으로 갈 때 서산시내와 태안읍내를 거치지 않고 가는 새로운 교통의 요지가 되고 있다.
서해안고속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면서 남부에 홍성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이 지역은 태안반도 천수만 연안의 교통중심지가 되었다.
문화유적은 취생리의 봉수산에 고구현 성지와 고구봉수대, 시루봉에 시루봉산성지가 있으며, 상촌리에 김우열 · 전용일 가옥, 행산리에 김좌진장군 생가가 있다. 동산리에는 신평이씨(新平李氏), 와리에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상촌리(上村里) · 내갈리(內葛里) · 신안리(新安里) · 가곡리(嘉谷里) · 갈오리(葛五里) · 동산리(東山里) · 쌍천리(雙川里) · 행산리(杏山里) · 오두리(鰲頭里) · 부기리(富基里) · 기산리(基山里) · 동성리(東星里) · 취생리(吹笙里) · 운곡리(雲谷里) · 와리(臥里) · 대사리(大寺里) 등 16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14㎢, 인구 2,3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결성군 읍내가 되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해 좌촌 · 우촌 · 교촌 등 2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천면과 하서면(下西面) 성호리(星湖里) 일부, 가산면(加山面) 일부, 홍주군 고남하도면 일부를 병합, 용천면으로 개칭되면서 홍성군에 편입되었다. 1917년에 다시 결성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83년에 와리가 갈산면에, 중리가 서부면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부에 형산(衡山, 210m), 서부에 청룡산(靑龍山, 236m) · 왕자산(王子山, 106m), 남부에 석당산(石堂山, 146m)이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50m 내외의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리천이 면의 중앙을 남동류해 동부 경계를 이루며 황해로 유입한다. 하천유역에는 좁은 충적지가 남북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북부에는 간척지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며, 채소 · 과일 · 잎담배 등이 재배되고 남부의 해안지역에는 홍성염전 · 성남염전 등이 있어 제염이 이루어진다. 상업은 가촌이나 상설시장이 뚜렷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5일과 10일에 읍내리 일대에서 열리는 5일장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은하면과 서부면으로 통하는 614번 지방도와 기타 도로들이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무량리에 고산사 대웅전 · 청룡산 봉수대가 있으며, 읍내리에 결성향교 · 결성동헌 · 석당산성(石堂山城), 성곡리에 한용운 생가지, 금곡리에 지석묘와 금곡산성이 있다. 또한 읍내리의 역촌(驛村) 일대는 조선시대 해문역(海門驛)이 있던 곳이며, 해창(海倉)은 조선시대 홍주목의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다. 성남리에는 해주최씨(海州崔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읍내리(邑內里) · 성호리(星湖里) · 성남리(星南里) · 금곡리(琴谷里) · 성곡리(城谷里) · 무량리(無量里) · 교항리(橋項里) · 용호리(龍湖里) · 형산리(衡山里)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36.79㎢, 인구 4,11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봉리이다. 본래 결성군 지역으로 상촌리의 굴곡이름을 따서 구을항면(仇乙項面)이라 해 상리 · 내중리 · 발현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암면(斗巖面) · 화산면(花山面)과 홍주군 궁경면(躬耕面) 선암리(仙巖里) 일부를 병합, 구항면으로 개칭되면서 홍성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중앙에 보개산(寶蓋山, 274m), 북동부에 백월산이 솟아 있고, 대부분 지역이 100∼4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부에 와룡천의 지류가, 동남부에 청광천(靑光川)이 흐른다. 와룡천 지류유역에는 조족상(鳥足狀)의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와 대마 · 잎담배 재배가 이루어진다. 도로는 홍성읍과 갈산면으로 향하는 29번 국도와 홍성읍과 광천읍으로 향하는 21번 국도가 지나며, 면의 동부에는 장항선 철도가 지나면서 인접한 광천읍 경계부에 신성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오봉리에 대원군 척화비와 석련사(石蓮寺)가 있으며, 지정리에 구절암(九節庵), 태봉리에 지석묘, 황곡리에 입석과 성지가 있다. 또 내현리에는 구산사(龜山祠)와 500년 된 느티나무, 청광리에는 1,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오봉리(五鳳里) · 황곡리(篁谷里) · 공리(公里) · 남산리(南山里) · 장양리(長陽里) · 태봉리(胎封里) · 내현리(內峴里) · 지정리(支井里) · 대정리(大井里) · 신곡리(新谷里) · 청광리(靑光里) · 마온리(麻溫里)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15㎢, 인구 3,70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부평리이다. 본래 홍주군 지역으로 평면(坪面)이라 해 가야 · 정광 · 대교 등 3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내기리(內基里) 일부가 홍동면에 편입되고, 송지곡면(松枝谷面)과 대감개면(大甘介面) 대교리(大橋里), 금동면(金洞面) 임래리(林來里), 홍천면 어경리(漁耕里) 일부를 병합, 금마천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면서 홍성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서부에 철마산(鐵馬山, 131m) · 퇴모산(136m) 등이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100m 이하의 저산성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금마천이 여러 지류들을 합쳐 서부 경계를 이루면서 흐르고, 유역에는 넓고 비옥한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며, 잎담배재배도 활발하다. 도로는 홍성읍과 예산군 응봉면으로 통하는 21번 국도, 죽림리의 21번 국도상에서 분기되어 응봉면으로 향하는 616번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있고, 장항선 철도가 지나면서 화양역이 설치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송암리에 송암성지(松巖城址)와 신곡리에 복한의 효자비가 있다. 용흥리에는 신안주씨(新安朱氏), 월암리에는 해주오씨(海州吳氏), 북평리에는 신평유씨(新平柳氏) 등의 동족마을이 있다.
부평리(富平里) · 월암리(月巖里) · 봉서리(鳳棲里) · 인산리(仁山里) · 가산리(佳山里) · 덕정리(德井里) · 용흥리(龍興里) · 송암리(松巖里) · 장성리(長城里) · 신곡리(新谷里) · 죽림리(竹林里) · 화양리(華陽里) · 송강리(松江里)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55.54㎢, 인구 3,58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이호리이다. 본래 결성군의 상서면(上西面)과 하서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 면을 합쳐 서부면으로 개칭, 홍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결성면 중리가 편입되고, 1989년 태안군 안면읍 죽도리가 편입되었다.
면의 동부에 철마산 · 청룡산, 북부에 우심산(牛心山, 170m) 등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대부분 100m 이하의 소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소구릉 사이에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 벼농사와 채소재배가 이루어지며, 구릉지에서는 저마 · 잎담배가 재배된다. 한편, 해안지역에서는 김과 조개류가 생산된다.
도로는 갈산면과 결성면으로 통하는 614번 지방도와 천수만 간척둑으로 향하는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특히 천수만 간척둑으로 향하는 도로는 육지부에서 태안군 남면을 거쳐 안면읍으로 가는 지름길의 일부가 되어 교통량이 급증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이호리에 김복한 묘와 추양사, 판교리에 임득의 묘(林得義墓)와 정충사(靖忠祠)가 있으며, 양곡리에 한원진 유허비와 양곡사가 있다. 이호리와 광리에는 밀양박씨, 상황리에는 청주이씨(淸州李氏) · 영월엄씨(寧越嚴氏), 어사리와 남당리에는 한산이씨(韓山李氏) · 김해김씨(金海金氏), 판교리에는 김해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이호리(梨湖里) · 광리(廣里) · 궁리(宮里) · 상황리(上黃里) · 거차리(巨次里) · 어사리(於沙里) · 남당리(南塘里) · 신리(新里) · 양곡리(暘谷里) · 판교리(板橋里) · 중리(中里) · 죽도리(竹島里)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88㎢, 인구 2,6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천리이다. 본래 결성군 지역으로 저을산과 벽제산 사이에 있는 긴 골짜기가 되어 사곡면(巳谷面)이라 하다가 조선 말기에 은하면으로 해 금리 · 상국 · 신점 등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산면과 오천군(鰲川郡) 천북면(川北面) 일부를 병합, 홍성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부에 지기산 · 은하봉(銀河峰, 224m), 남부에 검봉산(劒峰山, 125m) 등이 솟아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100m 이하의 소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산천(鶴山川)이 면의 중북부를 흐른다. 하천유역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에는 소규모의 간척지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와 논딸기 · 채소재배가 이루어지며, 특히 장척리 일대에서는 고등채소재배가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광업은 덕실리에 무연탄광산이 있다. 도로는 광천읍과 결성면으로 통하는 614번 지방도와 기타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학산리에 지석묘가 있다. 또 학산리에 밀양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대천리(大川里) · 유송리(柳松里) · 장곡리(長谷里) · 대율리(大栗里) · 금국리(錦菊里) · 학산리(鶴山里) · 목현리(木峴里) · 대판리(大板里) · 덕실리(德實里) · 화봉리(花峰里) · 장척리(長尺里)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92㎢, 인구 3,2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산리이다. 본래 홍주군에 딸린 오사면(烏史面)이 되어 송암 · 가동 · 가중 등 15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곡면(酉谷面)과 얼방면, 화성면(化城面) 일부, 홍안송면(洪安松面) 상소리(上所里) 일부, 대흥군(大興郡) 일남면(一南面) 하암리(花巖里) 일부, 청양군 서상면(西上面) 하강리(下江里) 일부를 병합해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면서 홍성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부와 중부는 100∼3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서부에는 소하천들이 흐르며 유역에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를 비롯해 잎담배의 재배도 활발하다.
서부 평야지대에는 홍동 · 광천 등의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광업은 월계광산(月溪鑛山)에서 금과 은이 생산되며, 대현광산(大峴鑛山)에서 금이 생산된다. 도로는 광천∼청양 간과 홍성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옥계리에 이광륜묘, 산성리에 조응식가옥과 여양현성지, 천태리에 약수암(藥水庵), 광성리에 내원사(內院寺) 등이 있다. 신동리와 지정리에 청주이씨, 월계리에 해주오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도산리(道山里) · 신풍리(新豊里) · 화계리(花溪里) · 광성리(廣城里) · 오성리(五聖里) · 죽전리(竹田里) · 가송리(佳松里) · 신동리(新東里) · 지정리(智井里) · 월계리(月溪里) · 행정리(杏亭里) · 천태리(天台里) · 산성리(山城里) · 옥계리(玉溪里) · 대현리(大峴里) · 상송리(上松里) 등 16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7.99㎢, 인구 3,52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운월리이다. 본래 홍주군 지역으로 번천면이라 해 종평 · 장평 · 대박 등 3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홍안송면 · 금동면 · 송지곡면과 유곡면 마정리(馬井里), 성지면(城枝面) 아동리(牙洞里), 오사면 죽상리(竹上里) · 가동리(佳洞里) 일부, 그리고 결성군 광천면 내구리(內九里) · 응암리(鷹巖里) 각 일부를 병합해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면서 홍성군에 편입되었고, 1983년 월림리 · 대평리 · 운룡리가 광천읍에, 구룡리가 홍성읍에 편입되었다.
면내에 높은 산은 없으며, 대부분 지역이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금마천의 지류인 소하천들이 면의 중앙을 흘러 북부의 홍양저수지로 유입하며 하천유역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며, 보리 · 감자 · 채소 · 잎담배 등이 재배된다. 광업은 홍성제삼광산에서 사금이 산출된다. 도로는 홍성읍과 장곡면으로 향하는 29번 국도와 금마면과 광천읍으로 향하는 기타 도로 등이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운월리에 창주사(滄州祠), 화신리에 화신사(花新祠)와 모충각(慕忠閣)이 있다. 금당리에는 창원유씨(昌原柳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운월리(雲月里) · 월현리(月縣里) · 원천리(元川里) · 홍원리(洪元里) · 화신리(化新里) · 문당리(文堂里) · 금평리(金坪里) · 구정리(求精里) · 팔괘리(八卦里) · 신기리(新基里) · 수란리(秀蘭里) · 금당리(金堂里) · 효학리(孝鶴里) · 대영리(大英里)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44.66㎢, 인구 1만 498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대동리이다. 본래 홍주군 지역으로 치사면(雉寺面)이라 해 신리 · 자경 · 택리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감개면과 덕산군 덕산면 수촌리(水村里) 일부를 병합해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어 홍성군에 편입, 1983년에 내법리가 홍성읍에 편입되었다.
읍의 서부에 용봉산 · 홍동산이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100m 이하의 소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을 흐르는 금마천 유역에는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는 벼농사와 채소재배가 이루어지고, 소구릉지대에서는 사과 · 복숭아 · 배 · 포도 · 감 등 과수재배와 가축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홍성읍과 예산군 삽교읍으로 통하는 609번 지방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기타 도로들이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장항선의 철도가 면의 동부를 지나지만 역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문화유적은 신경리에 용봉사와 용봉사 마애석불 · 용봉사 석조, 상하리에 미륵불, 내법리에 용주사(龍珠寺)와 용주사 석불, 용산리에 용산리 입상불이 있고, 노은리에는 엄찬 고택과 노은서원 유허비 · 성삼문 유허비 · 성삼문 묘가 있다.
대동리(大東里) · 중계리(中溪里) · 상하리(上下里) · 봉신리(鳳新里) · 내덕리(內德里) · 신경리(新耕里) · 석택리(石宅里) · 용산리(龍山里) · 갈산리(葛山里) · 신정리(新井里) · 산수리(山水里) · 노은리(魯恩里) · 대인리(大仁里) 등 13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