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연길(延吉), 호는 유촌(柳村). 승지 홍형(洪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력(經歷) 홍언광(洪彦光)이고, 아버지는 좌참찬 홍담(洪曇)이며, 어머니는 현감 조익수(曺益修)의 딸이다.
1567년(명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72년(선조 5)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이어 삼사(三司)의 여러 관직을 거쳐, 1583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여립의 조카 정집(鄭緝)의 문초에서 그의 이름도 거론되어 국문을 받고 구성으로 귀양갔다. 뒤에 풀려나와 제용감정(濟用監正)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조정랑 신경진(辛慶晉)과 함께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 각 진영의 연락과 군수품 공급의 일을 맡았다.
같은 해 곽산에서 구성으로 들어가 그 곳 관민의 협조를 얻어 많은 양곡을 정주·가산 등지로 수운하여 군량공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뒤에 황해도암행어사·조도사(調度使)를 거쳐, 직제학에 이르렀다.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