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군측(君則), 호는 운와(芸窩). 예조참판 홍영(洪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명공주(貞明公主)와 혼인한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이고, 아버지는 판결사 홍만회(洪萬恢)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관찰사 홍명일(洪命一)의 딸이다. 김창흡(金昌翕)을 사사하였다.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임명되었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군자감주부·사헌부감찰·공조좌랑·호조정랑 등을 거쳐, 1719년 석성현감·금화현감·예천군수·단양군수를 지낸 뒤 강화경력(江華經歷)으로 있다가 임소에서 죽었다.
금화현감으로 있을 때는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던 강도사건을, 옛날에 모종(模種)이 썼던 방법으로 강도가 자수하게 한 일이 있었다. 문장에 능하였으며, 특히 시에 있어서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당시 시명(詩名)을 날렸던 조유수(趙裕壽)·이병연(李秉淵)·홍세태(洪世泰) 등과 시사(詩社)를 만들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는 『운와집』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