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양양군, 서쪽은 경기도 양평군 · 가평군, 남쪽은 평창군 · 횡성군, 북쪽은 춘천시 · 인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51'∼127°32', 북위 37°32'∼37°56'에 위치한다. 면적은 1,819.60㎢이고, 인구는 7만 33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9개 면, 196개 행정리(10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에 있다.
태백산맥 서사면의 이루를 차지해 기복이 심하고, 동부와 북부에는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연이어 있어 산지가 전체 면적의 87%를 차지한다. 군의 해발고도는 약 150m에서 1,000m 내외를 이루고 있다. 내면지역은 해발 800m 이상의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내륙 산간지대이기 때문에 평야의 발달은 미약한 편이나, 각 수계를 따라 홍천분지를 비롯하여 소규모의 하안단구와 산록완사면이 형성되어 있어 중요한 생활터전이 되고 있다.
북쪽에 약수산(藥水山, 1,306m) · 가칠봉(柯七峰, 1,240m) · 가마봉(可馬峰, 1,191m) · 응복산(鷹伏山, 1,360m) · 구룡덕봉(九龍德峰, 1,388m), 동쪽에는 오대산(五臺山, 1,563m) · 상왕봉(象王峰, 1,493m) · 두로봉(頭老峰, 1,422m), 남쪽에는 계방산(桂芳山, 1,577m) · 운무산(雲霧山, 980m) · 수리봉(수리봉, 960m) · 발교산(髮校山, 998m) · 오음산(五音山, 930m), 서쪽에 장락산(長樂山, 627m) · 나산(羅山, 628m) 등이 솟아 있다.
이 밖에도 팔봉산(八峰山, 302m) · 공작산(孔雀山, 887m) · 응봉산(鷹峰山, 868m) · 매화산(梅花山, 752m) 등 많은 산들이 연이어 있다.
홍천강(洪川江)이 내촌천(乃村川) · 장남천(長南川) · 군업천(郡業川) · 덕치천(德峙川) · 수성천(壽城川) · 어룡천(魚龍川) · 성전천(城前川) · 굴지천(屈只川) 등의 여러 지류와 합쳐지면서 군의 중앙부를 서류한다. 내린천(內隣川)은 홍천군 소계방산에서 발원한다.
기후는 내륙 산간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해양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온의 차가 심한 이른바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 10°C, 1월 평균기온 -6.1°C, 8월 평균기온 24.°C이며, 연 강수량은 1,557㎜이다.
그러나 내면과 서석면 등지의 산간은 해발고도가 높아서 지형적인 영향으로 강수량이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많다. 평균기온이 낮아 식물생육기간이 짧은 고랭지기후를 나타낸다.
한민족이 동북아시아 일대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살기 시작한 시기가 구석기시대부터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강원도의 경우 이 군과 인접한 횡성군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그 견해가 입증되었다.
즉, 북방면 하화계리의 홍천강 유역에서 5만∼10만 년 전의 중기 구석기시대 것으로 보이는 석영제(石英製) 찍개 · 긁개 · 찌르개 등이 출토되어, 이 지역에서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살았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에 속해 벌력천현(伐力川縣)이라 불렀다. 757년(경덕왕 16) 녹효현(綠驍縣)으로 개칭되었고 삭주(朔州)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별호(別號)는 화산현(花山縣)이었다.
1018년(현종 9)홍천현으로 개칭되었으며, 춘주(春州)의 속현으로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다가 1143년(인종 21)에 비로소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에서와 마찬가지로 홍천현이라 하고 감무가 파견되었다가 1413년(태종 13) 수령직(守令職) 강화책의 일환으로 감무를 현감(縣監)으로 고치면서부터 현감이 설치되었다.
1894년(고종 31) 전국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홍천지방에서도 농민항쟁이 크게 일어났다. 당시 강원도지역의 농민군 총지휘자는 대접주(大接主) 차기석(車箕錫)이었고, 홍천지방의 접주는 심상현(沈相賢)이었다.
홍천현감의 보고에 의하면 동학 수령 차기석이 접주 박종백(朴鍾伯)과 더불어 수백 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홍천의 물걸리를 습격했다고 한다. 또 내면 · 서석면 일대는 동학농민군의 최후의 항전지로서 수천 명이 집결하여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참패했다. 이 때 농민군의 사상자가 8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1895년에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춘천부(春川府) 홍천군이 되어 9개 면을 관할하였다. 다음해에 전국에 13도제가 실시될 때 강원도 홍천군으로 개편되었다. 1919년 3 · 1운동이 발발하자 군내에서는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공동으로 홍천읍 · 동면 · 내촌면 등지에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3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분지리가 서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38도선 이남의 남면 · 내면 · 기린면 등 3개 면이 홍천군에 편입됨으로써 총 12개 면의 행정구역을 이루었다. 1950년 6 · 25전쟁이 일어나자 전선이 38도선 아래로 밀렸으나 춘천과 홍천에서는 말고개전투에서의 아군의 승리로 적군의 침공을 2,3일 늦출 수 있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이 시행됨에 따라 광복 직후 인제군에서 편입되었던 남면과 인제면이 다시 인제군에 속하게 되었다.
1963년 1월 1일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가 북방면에, 풍천리가 화촌면에,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내면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내면 미산리가 인제면으로, 남면 상창봉리가 횡성군으로 편입되는 행정구역 조정을 거쳤다. 1983년 2월 15일에는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7월 26일북방면 성동리 일부가 화촌면 구성포리에 편입되었다.
선사시대 유물 · 유적으로는 북방면 하화계리에서 구석기시대의 찍개 · 긁개 · 찌르개 등 뗀석기가 출토되어 5만∼10만년 전의 홍적세 때 홍천강가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하화계리 일대에서는 민무늬토기 조각과 간석기들이 출토되었다.
화촌면의 홍천군업리지석묘군(강원도 기념물, 1986년 지정)에서도 민무늬토기와 지석묘의 16기(基)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에도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관방유적으로는 홍천읍에서 서북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있는 봉화산(烽火山)에는 조선 초기의 희망리봉수대가 있다. 산성으로는 홍천읍의 희망리성지 · 대미산성(大彌山城) · 검진리성지, 동면의 성수리성지 · 덕치리성지 · 월운리성지 등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홍천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보물, 1971년 지정)은 희망리로 이전되었고 홍천희망리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홍천희망리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 홍천철비 · 홍천진리석불, 검진리석탑, 구성포리석탑, 장남리삼층석탑이 있다. 홍천철비는 1984년, 홍천진리석불 1984년, 장남리삼층석탑은 1984년에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또한 내촌면의 홍천물걸리사지(강원도기념물, 1982년 지정) · 홍천물걸리석조여래좌상(보물, 1971년 지정) · 홍천물걸리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971년 지정) · 홍천물걸리불대좌(보물, 1971년 지정) · 홍천물걸리불대좌 및 광배(보물, 1971년 지정) · 홍천물걸리삼층석탑(보물, 1971년 지정), 두촌면의 괘석리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내촌면 서곡리 쌍계사지의 부도 · 쌍봉당대선사사리탑비(雙峰堂大禪師舍利塔碑), 수타사 소장 소조사천왕상, 영산회상도 등이 있다. 소조사천왕은 1998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나 2023년 보물로 승격되었으며, 영산회상도는 1998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동면 덕치리의 수타사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수타사홍온당부도(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수타사대적광전(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를 비롯하여 서곡대사(瑞谷大師)사리탑비 ·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 · 18(보물, 1983년 지정) · 봉황문 · 흥회루(興懷樓) 등이 있다.
이 밖에 남면 양덕원리에 양덕원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북방면 장항리에 용수사지(龍水寺址) 등이 있다. 현존 사찰로는 수타사를 비롯하여 천축사 · 홍남사(洪南寺) · 대광사 · 약수사 · 호국사(護國寺) · 서봉사(瑞鳳寺) · 대승사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홍천읍 희망리의 홍천향교(강원도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를 비롯하여 화촌면 성산리에 박영철(朴英轍)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화성단(華城壇), 서면 어유포리에 노동서원(魯東書院)이 있다.
고가로는 화촌면 군업리에 아양정(峨洋亭), 서석면 풍암리에 김학균가옥( 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비각으로는 화촌면 외삼포리에 완산이씨열녀각, 3 · 1운동 때 내촌면 물걸리에서 순국한 8열사의 얼을 추모하는 팔렬각(八烈閣), 서석면 청량리에 정규시효자비(鄭奎時孝子碑), 동면 성수리에 순국삼일열사비 등이 있다.
사적으로는 서석면의 홍천풍암리동학혁명전적지(강원도 기념물, 1977년 ㅈ지정), 동면 속초리에 한말 의병장 민긍호(閔肯鎬) 격전지가 있다. 서석면 풍암리에 팔백동학군의총, 수하리에는 홍천동창보수로 및 암각명(강원도 기념물, 1994년 지정)이 있다.
2000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서면 모곡리에 남궁억묘역이 있다.
내면에는 홍천명개리열목어서식지(강원도 기념물, 1994년 지정)가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홍천향교가 있었다. 홍천읍 희망리에 있는 홍천향교는 1531년(중종 26)에 두촌면 철정리에 창건되었으며, 화촌면 삼포리로 옮겨졌다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또한, 서면 어유포리의 노동서원은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최변(崔汴)이 북방면 노일리에 세워 최충과 그의 아들 유선(惟善)을 배향하였으며, 1932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홍천읍에 홍천공립보통학교가 개교되었으며, 1918년에 서면 모곡리에 남궁 억이 모곡학교(牟谷學校)를 개교하였다. 이 학교는 ‘보리울학교’라고도 했는데 무궁화보급운동, 국어의 보존 · 발전, 실업교육, 전인교육 등에 앞장섰다. 현재 한서초등학교와 한서중학교로 발전하여 남궁 억의 보리울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25개교, 중학교 11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또한 홍천군립도서관이 있어 지방교육 ·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홍천문화원은 한서문화제(翰西文化祭)를 비롯한 각종 문화 · 예술행사를 관장하며, 자료보존 및 연구를 통해 향토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복놀이 · 농악 · 윷놀이 · 널뛰기 · 연날리기 · 횃불놀이 · 씨름 · 그네 · 줄다리기 등이 있다. 이 중 복놀이는 한여름 복날 시원한 냇가나 계곡으로 가서 손수 개를 잡아 개장국(용탕)을 끓여먹은 뒤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기며 더위를 식히는 놀이이다.
또한 이 고장에서는 남궁 억의 보리울정신과 무궁화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해마다 한서문화제를 거행한다. 이 제전행사 때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진다. 1985년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 때는 이 고장의 전통혼례식을 재현하여 ‘청실홍실’이라는 명칭으로 참가한 바 있다.
현존하는 전통적인 동제는 없으나 9월 9일(重陽節)에 각 마을에서는 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쌀을 모아 떡을 만들어 대동고사(大同告祀)를 지냈다. 10월 초순에 성산고사(城山告祀)를 지냈다는 단편적인 기록이 보인다.
한편 근년에 마련된 제의행사도 있는데, 1956년 최남선(崔南善)과 성균관의 추천을 받아 조선 정조 때 화촌면 성산리에 살았던 박영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화성단을 모시고 매년 9월 15일 군내 유림회(儒林會)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10월 4일에는 북방면 성동리에 있는 강재구공원에서 추모제가 거행된다.
이 고장에는 「오음산과 삼마치전설」 · 「쌍계사전설」 · 「양구(兩鳩)데미」 · 「이소(李嘯)의 효행」 등 지명 · 인물에 얽힌 설화가 다수 전하고 있다.
삼마치(三馬峙)는 홍천과 원주를 잇는 국도 중간쯤에 있는 큰 고개로 그 마루턱에 오음산(五音山)이 있다. 옛날 이 고을사람들은 오음산에서 다섯 명의 장수가 태어난다는 속전을 믿고 이들이 행여 반역을 일으킬까 두려워 산골짜기에 구리를 녹여 붓고 쇠창을 꽂았다.
그러자 장수의 혈맥이 끊겼던지 검붉은 피가 용솟음치면서 다섯 가지 괴상한 울음소리가 사흘 밤낮을 그치지 않고 울려왔다. 사흘이 지난 저녁 주인을 잃은 백마 세 마리가 나타나 애달프게 울다가 고개를 넘어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 뒤부터 마을사람들은 이 산을 오음산, 고개를 삼마치라 불렀다 한다.
쌍계사는 신라 서곡대사가 절터를 볼 때 계란을 묻어 닭이 울어야 명당이라고 하면서 밤중에 계란을 묻었다. 과연 새벽에 닭 두 마리가 홰를 치며 울어 쌍계사(雙鷄寺)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후에 두 줄기의 시내가 흐름을 보고 쌍계사(雙溪寺)로 고쳤다고 한다.
「양구데미」(평창에서 홍천을 거쳐 횡성으로 이어지는 고개이름)는 두 마리의 황금비둘기가 날아가 지령(地靈)이 다하는 바람에 함부로 이장을 못했다는 명당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같은 명당전설로 계란과 닭이 나왔다는 「한천자부친묘(韓天子父親墓)」, 암장하면 복운이 깃들인다는 「남산시신(南山屍身)」 등의 이야기도 전한다.
「이소의 효행」은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겨울에도 산삼 · 잉어 · 앵두를 구해 바쳐 병환을 낳게 했다는 지성감천효(至誠感天孝)에 관한 이야기이다.
「백우산(白羽山)장수전설」은 후환이 두려워 부모가 아기장수를 죽였다는 내용인데 다음과 같다. 옛날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백우산 기슭 매지골이라는 마을에 초맹삼이란 어질고 착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농사라고는 화전(火田)에서 나는 감자 옥수수 콩 따위의 밭곡식뿐이고 쌀은 이웃 동리에 가서 몇 되 구해다가 조상의 제사 때나 쓰는 형편이었다. 그의 부인 허을란 여인 역시 마음이 착하고 남편을 잘 공경하여 인근에서 금슬 좋은 부부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나이가 오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항상 시름에 잠겼다.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소생이 없어 대를 이을 옥동자를 얻기가 평생의 소원이었다.
어느 해 가을이었다. 백운산에는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 색동저고리를 입혀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부부가 오전 일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설악산으로 간다는 늙은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다.
마음이 착한 부부는 뛰어 내려가 스님을 반갑게 맞았다. 스님을 마당에 펴놓은 멍석에 앉히고 강낭콩을 넣은 밀범벅을 대접한 후 농사지은 콩을 한 되 독에서 떠다가 시주했다. 그랬더니 스님은「나무아미타불」을 몇 번 되뇌고는 홀연히 그 곳을 떠났다.
가을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백우산에는 화창한 새 봄이 왔다. 이 때 이들 부부에게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부인의 몸에 태기(胎氣)가 생긴 것이다. 최씨 부부는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기왕이면 떡두꺼비 같은 옥동자를 낳아 주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가을이 되자 부인은 드디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아들을 낳았다. 부부의 기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일 뿐 즐거운 일에는 슬픔이 따른다고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백 일이 지나기도 전에 기운이 장사였고 더욱 이상한 것은 밤마다 살그머니 나갔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들어오는 것이었다.
부부는 차츰 겁이 나고 기이하게 여겨 하루는 몰래 뒤를 따라가 숨어서 아들이 하는 행동을 훔쳐보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어린 아이는 칼을 들고 무술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행동은 신출귀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이 비호같았다. 숨을 죽이고 이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본 부부는 장수 아이를 낳은 것을 깨닫고 놀라움과 근심으로 그 자리에서 실신할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방바닥에 엎드려 밤새도록 남 몰래 통곡했다. 그 당시에는 장수를 낳으면 나라에 화를 입힌다고 하여 아이가 성장하여 힘을 쓰기 전에 부모의 손으로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도 중죄를 받아야 했다. 장수 아이는 자라면서 무슬이 점점 뛰어났고 그 소문은 동네에 널리 퍼져 나갔다. 부부는 애를 태우면서 아이가 방에서 글을 읽는가하고 들여다보면 어느새 강변에 나가 칼싸움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장수아이에 관한 소문은 널리 퍼져 원주에 있는 감영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장수 아들을 죽이기로 했다.
어느 비 내리는 밤, 뇌성은 천지를 뒤흔들고 번갯불이 쉴 새 없이 번쩍였다. 부부는 굳게 마음을 다지고 잠자는 아들의 몸 위에 콩 두 가마니를 얹었다. 그러나 아들은 움직이지만 못할 뿐 두 눈이 말똥하여 저주하는 눈으로 부모를 쳐다보았다. 이들은 콩 한 가마니를 더 얹어 장수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 장수가 죽자 장수를 따라 나타났던 용마가 울며 헤매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도 도관 2리에 ‘우렁골’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그 때 용마가 울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쉴 바위’라고 불리우는 5평이 넘는 큰 바위가 있는데 장수가 쉬었던 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곳에서 3km 떨어진 곳에 ‘약세’라는 곳이 있는데 용마의 죽통과 말 발자국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장수를 모실 수 없게 된 용마는 슬피 울면서 헤매다가 크게 한번 뛰어 영월 땅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영월에는 용마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며 장수 아들을 죽인 부부는 시름시름 앓다가 오래가지 못해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주색잡기에 빠졌던 도공(陶工)이 분수를 되찾고 다시 이름있는 도공의 위치를 회복한다는 「계영배(戒盈盃)이야기」를 비롯하여「학명루(鶴鳴樓)전설」 · 「이괄바위」 · 「권대감과 애마」 · 「며느리고개」 · 「벽락소전설」 등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 지방에 전하는 민요는 「한오백년」 · 「선소리」 · 「자진방아타령」 · 「밀맷돌질」 · 「옛날옛적」 · 「송기절편」 · 「제비요」 등과 동요 · 유희요 · 동물요 등이 있다.
「한오백년」은 “백사장 모래밭에 칠성당 보고/임생겨 달라고 비나이다/(후렴)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 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한많은 이세상 냉정한 세상/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살겠네/꽃답던 내 청춘 절로 늙어/남은 반생 어느곳에 뜻붙일까.”와 같이 한(恨)과 원(願)의 미학으로 표백되어 있다. 춘천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널리 불리고 있으나 가사가 조금씩 다르다.
「선소리」는 지역별로 가사가 다소 다르기는 하나 숭천(崇天) · 숭불(崇佛) · 충효(忠孝) · 허무(虛無) · 훈교(訓敎)의 골격 유지는 거의 같다.
“절통하고 애통할손 부모은공 못갚아 /무정세월 야속터라 원수백발 달려드니 /인생칠십 고래희라 없던망령 절로난다 /……칠성님께 발원하고 부처님께 공양한들 /어느곳 부처님이 감응하야 살릴소냐 /지성구호 극진한들 죽을병을 살릴소냐 /……옛늙은이 말들으니 저승길이 멀다더니 /오늘내가 당하기는 대문밖이 저승이라 /부귀귀천 수요단장 모두다 팔자니라 /사주도망 못하니 마음착히 닦아스라…….”와 같은 160행의 장가이다. 「선소리」는 대개 「수심가」의 가락에 얹어 부르고 있다.
「자진방아타령」은 “강원도 영천앞강에 물레방아가 있는지라 /믿지않는 마누라들이 모두 방아를 찧어이야 /어서찧고 잠이나 자잤구나 /낭군없이 드는잠은 새우잠을 잔다 /……(후렴) 에헤로 찧어 찧어도 방아 흥이로구나.”처럼 노동요이면서도 술 · 임 · 잡기 같은 내용들이 불연속성을 이루면서 담겨 있다.
동요인 말엮이요는 “동무야 나무가자 /배가아파 못가네 /무슨배 자라배 /무슨자라 읍자라 /무슨읍 골읍 /무슨골 북청골…….” 식이고, 유희요로서는 “울콩돌콩 /메나리밭에 부록콩 /수수밭에 잔듸콩 /오뉴월에 푸른콩…….”과 같다. 동물요인 「꿩노래」는 “꽁꽁 꽁서방 /바우다리 최서방 /자네지즙 어데갔나 /이산 저산 댕기다가 /포수한테 잡혀갔네.”식으로 해학과 독설적인 내용으로 짜여 있으면서도 동심의 천진성을 잃지 않고 있다.
내륙 산간지역으로 전 주민의 약 4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산지가 많아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활발하다. 산업별 구조를 보면 1차산업이 42%, 2차산업이 6%, 3차산업이 52%이다. 총경지면적 1만 2651㏊ 가운데 논이 4,824㏊, 밭이 7,827㏊로 밭이 많으며, 농가가구는 7,350가구, 농가인구 1만 9924명으로 계속 감소 추세에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옥수수 · 조 · 메밀 · 콩 · 팥 및 감자 등이다. 최근에는 고랭지채소가 내면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인삼재배가 여러 곳에서 재배된다. 홉의 재배는 화촌면 · 두촌면 · 홍천읍 · 내촌면 · 동면 등지에서 활발하다. 잎담배 생산은 동면 · 서면 · 남면 · 북방면 · 화촌면 등지에서 이루어지나 외국담배의 수입관계로 잎담배 경작 가구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한편 농가가구와 인구의 감소와는 반대로 농기구의 보급은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일반적으로 가축사육 가구 수는 1980년대 이후 감소되고 있으나 마리 수는 증가되고 있어 목축업이 점차 부업적인 성격에서 기업적인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우는 동면 · 서석면 · 화촌면 · 남면 · 북방면, 젖소는 남면 · 홍천읍 · 서면 · 내촌면 · 화촌면, 양돈은 내촌면 · 남면 · 내면 · 서석면 · 서면, 양계는 남면 · 홍천읍 · 서면 · 북방면 · 화촌면, 양봉은 내면 · 북방면 · 화촌면 · 서석면 · 내촌면 · 서면 등이 중심이다.
임야면적 14만 9590㏊ 중 국유림은 8만 4690㏊, 공유림은 1만 237㏊, 사유림은 5만 4663㏊이다. 임목지 14만 8386㏊ 중 침엽수림이 5만 4580㏊, 활엽수림이 3만 9304㏊, 혼효림이 5만 4002㏊이다. 주요 임산물은 용재 · 종실 · 버섯 · 산나물 등인데, 특히 잣 · 밤 · 대추 · 도토리의 생산이 많다.
광업은 철광석 · 사금 · 은 · 석면 등이 산출되고, 특히 두촌면의 자은철광산(자은철광산)은 국내 최대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대량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의 개발이 기대된다. 제조업은 부진하여 소규모의 가내공업으로 영위되고 있고, 양조 · 제재 · 정미 · 가발제조업 등이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홍천읍과 남면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홍천강의 수운을 이용한 교역이 발달해 1770년대 군내에는 홍천읍 읍내장이 4 · 9일에, 천감장이 3 · 8일에, 남면의 양덕원장이 5 · 10일에 개설되어 이 지방 특산물인 잣 · 버섯 · 약초 · 꿀 등이 거간이나 보부상들에 의해 집산되어 다른 지역으로 실려간다. 서울에서 뱃길을 이용해 실려온 소금 · 새우젓 등 양념류가 판매되었다.
1830년대에는 양덕원장이 소멸되어 앞의 2개만이 개설되었다. 1913년에는 홍천읍내장이 5 · 10일에, 서석면 상군두리장이 4 · 9일에, 두촌면 역내리장(천감리장의 다른 명칭)이 5 · 10일에 개설되었다. 1923년에는 홍천 신장대리장이 1 · 6일에, 서석의 풍암장(상군두리장이 바뀜)이 4 · 9일에 개설되었다. 1926년에는 앞의 신장대리장과 풍암장 외에 서면에 모곡장이 3 · 8일에 개설되었다.
1938년 1면 1시장 정책의 결과 홍천에 홍천읍장이 1 · 9일에, 화촌면의 성산장과 두촌의 자은장이 5 · 10일에, 내촌면의 도관장과 남면의 양덕원장이 3 · 8일에, 풍암장이 4 · 9일에, 모곡장이 2 · 7일에 개설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시장이 증가하여 1963년에 15개의 정기시장이 군내에 개설되었다.
그러나, 사회가 근대화되고 교통이 편리해져 읍내나 큰장에서 상품을 구입하게 되면서 점차 감소되어 1994년에는 5개의 장만이 남게 되었다. 따라서 홍천읍의 1개 상설시장이 있고, 4 · 9일의 자은장 · 풍암장, 남면의 시종장, 2 · 7일의 내촌면의 도관장, 5 · 10일의 내촌면의 물걸리 동창장 등이 개설되고 있다.
교통은 철도는 없으나 군내에는 국도 4개 노선, 지방도 6개 노선, 군도 15개 노선이 있고, 군도의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포장되어 편리한 편이다. 즉, 홍천읍은 춘천∼원주, 양평∼양양을 잇는 5번, 44번 국도가 교차한다. 화촌면 구성포리에서는 44번 국도와 김화∼양양을 잇는 56번 국도가 교차한다. 서면의 율전리에서는 56번 국도와 울산∼신고산을 잇는 31번 국도가 교차한다.
군내 내륙 산간지역도 지방도 · 군도 등이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어 종전보다 매우 편리해 졌다. 56번 국도는 창촌과 양양군 서면 갈천리 사이의 구룡령 일대가 1995년 완전 포장되어 동∼서간의 교통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내면 명개리와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를 연결하는 446 지방도가 두로봉과 상왕봉 사이의 두로봉령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비포장)
오음산 서쪽에는 삼마치리와 횡성군 공근면 상창봉리를 연결하는 5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특히, 춘천∼대구를 연결하는 중앙고속도로의 춘천∼홍천구간이 개통되어 홍천읍과 춘천과의 시간과 거리가 많이 단축되었고, 홍천∼원주구간이 완공되어 편리해졌다. 2017년에는 서울특별시 강동구와 강원도 양양군을 잇는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동홍천~양양 구간이 개통하여, 서울과의 접근성도 좋아졌다.
15개 군도의 노선을 보면, 1번 대곡∼두미, 2번 횡석∼학담, 3번 보래∼조항, 4번 마곡∼부사원, 5번 수하∼물걸, 6번 노천∼주음치, 7번 양덕원∼남노밀, 8번 화동∼풍천, 9번 대곡∼어유포, 10번 내삼포∼야시대, 11번 생곡∼원동, 12번 하오만∼굴운, 13번 육전∼생둔, 14번 팔봉∼역전평, 15번 광원∼방동 등이다.
이 군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 맑은 물이 있어, 여름 피서지로 적합한 관광지이다. 주요 관광지는 동면의 공작산(孔雀山)과 수탄사계곡, 두촌면의 용소(龍沼)골, 경수(鏡水)골, 서면의 팔봉산과 대명 홍천레저타운, 북방면의 강재구공원 등이다.
공작산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어 온갖 산짐승들이 살고 있고, 산상에는 맑은 샘까지 있어 등산객들을 매료시킨다. 산 입구에는 원효대사가 세운 수타사가 있어 산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수타사 계곡은 이끼 하나 없는 백석계곡(白石溪谷)으로 곳곳의 소와 함께 문자 그대로 선경이다.
수타사에서 공작산을 넘는 등산 코스는 1일 관광 코스로 유명하다. 용소골은 두촌면 천치리에서 백우산까지의 약 12㎞ 계곡을 말하는데, 원시의 계곡을 방불케 한다.
팔봉산은 해발 300여m, 둘레 4㎞ 정도로 작은 산이지만 온 산이 모두 기암괴석과 송림으로 우거져 있다. 산밑을 흐르는 홍천강물과 강안에 펼쳐진 백사장이 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면 팔봉리에 있는 대명 홍천레저타운은 스키 및 골프장을 비롯하여 각종 위락시설을 갖춘 국제규모의 사계절 휴양지이다.
1973년에 건립된 강재구공원에는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이외에 서석면 풍암리에는 동학혁명기념비가 있어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었고, 홍천읍 연봉리에는 무궁화공원이 조성되어 군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문화관광축제로는 찰옥수수축제, 인삼축제, 홍천강견지낚시축제, 한서문화제사 매년 개최 된다. 한서문화제는 사상가이자 정치가이자 최초의 언론인이자 교육자로서, 나라꽃사랑운동을 펼쳐 무궁화가 나라 꽃이 되는데 큰 공헌을 한 한서 남궁 억을 기리고, 군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행사이다. 이 행사는 문예행사, 전통민속경기, 체육경기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찰옥수수축제는 매년 8월에 열린다. 지역 농산물 중의 하나인 옥수수를 테마로 열리는 전국 유일의 축제이며, 다른 지역 축제보다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성격을 가진 축제라 할 수 있다. 기타 문화예술행사로는 무용가 최승희기념사업회 주관 최승희춤축제가 2006년부터 개최되었다.
수타사성보박물관은 수타사가 소장한 1983년 보물로 지정된월인석보의 도난 및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수타사 경내에 4억 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하였으며, 2005년 5월 10일 개관했다.
건축 연면적 24.67평의 성보박물관은 보물인 월인석보를 비롯, 1998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영산회상도 및 지왕시왕도와 관세음보살상 사리함 등 문화유산을 보관 · 전시하고 있다. 성보박물관은 지난 1999년 오대산 월정사에 임시 보관됐던 보물 월인석보를 6년만인 2005년 4월 11일 반환받은 바 있다.
무궁화공원 안쪽에 자리한 홍천향토사료관은 홍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춘 곳이다. 제1전시실은 홍천의 역사, 주민들의 의식주, 관혼상제 등에 관한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남궁억과 무궁화에 대한 사료가 전시된 무궁화 역사관이다.
제3전시실은 농경전시관으로 과거 강원 산골에서 쓰던 주루막, 등잔, 함지박을 비롯해 올챙이묵틀, 탈곡기 등 농경문화의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107.15㎢, 1만 3,186세대, 인구 3만 5796명에 남자 1만 8051명, 여자 1만 7745명이다(2015년 현재). 읍소재지는 희망리이다.
고구려 때 벌력천현(伐力川縣)이라 칭해졌고, 신라시대에는 화산현(花山縣)이라 불렸다.
1018년(현종 9)에 현이 있는 곳이라 하여 현내면(縣內面)이라 개칭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군내면(郡內面)이라 하다가 1917년홍천면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홍천읍으로 승격되면서 남면의 삼마치리가 편입되었고, 1983년남면 상오안리가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20일희망11리, 갈마곡4리, 연봉8리, 하오안3리가 신설되었다.
남쪽에는 오음산(930m) · 매화산(梅花山, 752m) · 갓끈봉(643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북동쪽에는 홍천강이 여러 지류와 합쳐지면서 서류하고, 유역에 소규모의 범람원과 하안단구가 형성되어 주요 농경지와 취락의 입지로 이용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하천유역에서 벼농사가 행해지며, 홉재배를 비롯하여 젖소의 사육과 양계도 활발하다. 상오안리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통은 춘천∼원주를 잇는 5번 국도와 양평∼양양을 잇는 44번 국도가 읍의 중앙에서 교차한다. 특히 춘천∼대구를 연결하는 중앙고속국도의 인터체인지가 있어 편리하다. 홍천∼인제군 미교를 잇는 444번 지방도가 시작되고, 하오안∼화촌면 수하리를 잇는 12번 군도가 시작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희망리에 삼층석탑 · 당간지주 · 사사자삼층석탑 · 홍천향교 · 철비, 진리에 석불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3개 교가 있다.
희망(希望) · 진(津) · 신장대(新場垈) · 갈마곡(葛馬谷) · 검진(檢津) · 와동(瓦東) · 결운(決雲) · 태학(太學) · 연봉(蓮峰) · 하오안(下吾安) · 장전평(長田坪) · 삼마치(三馬峙) · 상오안(上吾安)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0.32㎢, 2,570세대, 인구 6,104명에 남자 3,196명, 여자 2,90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덕원리이다.
본래 홍천군 지역으로 금물산면(今勿山面)이라 하다가 1917년남면으로 개칭되었고, 면 소재지가 시동리에서 양덕원으로 옮겨졌다.
1963년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장전평 · 하오안 · 삼마치리 등이 홍천읍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상창봉리가 횡성군 공근면에, 북방면 노일리 일부가 남노일리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상오안리가 홍천읍에 편입되었다.
금물산(760m) · 까끈봉 · 시루봉(504m) · 갈기산(葛基山, 685m) · 매봉산(梅峰山, 651m) 등이 솟아 있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양덕원천(어룡천)이 여러 지류와 합쳐지면서 중앙을 북류함으로써 유역인 시동리 · 유치리 · 양덕원리 일대에 기름진 평야와 산록완사면이 형성되어 농경지와 생활터전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하천유역의 평지에서 벼농사가 행해지며, 잎담배가 많이 생산된다. 최근에는 홉과 인삼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양덕원리에는 양덕원농공단지, 유목정리에는 화양목재가공 특산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통은 양평∼양양을 잇는 44번 국도와 횡성∼청평을 잇는 494번 지방도가 양덕원리에서 서로 교차한다. 양덕원∼남노일리를 잇는 7번 군도가 개설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양덕원리에 삼층석탑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양덕원(陽德院) · 유목정(楡木亭) · 신대(1)(新垈) · 월천(月川) · 제곡(諸谷) · 용수(龍水) · 남노일(南魯日) · 화전(花田) · 명동(明洞) · 시동(時洞) · 신대(2) · 유치(楡峙)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7.97㎢, 1,421세대, 인구 3,738명으로 남자 1,964명, 여자 1,774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촌리이다.
본래 강릉군 지역으로 내면이라 하다가 1895년내일면(內一面), 내이면(內二面) 두 면으로 나뉘었다. 1906년인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다시 두 면이 합쳐져 내면이라 불렸다. 1945년 38도선이 생기면서 인제군이 양단되자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편입되었고, 미산리(美山里)가 인제군 기린면에 편입되었다.
계방산 · 오대산 · 두로봉 · 응부산(1,360m) · 가칠봉(柯七峰, 1,240m) 등의 높고 험한 산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어 군내 대표적인 산악지대를 이룬다. 계방천이 면의 동부를 서류하고, 자운천이 중앙을 북동류하여 광원리에서 합류해 내린천(內麟川)이 되어 서류한다. 내린천의 또 한 지류가 서부를 북류하고 있으나 유역에 평야는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옥수수 · 감자 · 약초 등의 생산이 군내 제1위이고, 표고버섯의 생산도 많다. 특히 최근에는 교통의 발달에 따라 해발 800m 이상에 이르는 고원지대에 고랭지채소가 대규모로 재배되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광원리에는 삼봉자연휴양림과 약수가 있고, 내린천 계곡에는 모래소유원지, 창촌에는 약초단지가 있다.
교통은 김화∼양양을 잇는 56번 국도가 완전 포장되어 중앙을 북동, 남서방향으로 지난다. 인제∼울산을 잇는 31번 국도가 율전리와 창촌리에서 만난다. 신남∼진부를 잇는 446번 지방도가 부분적으로 포장되어 있다. 보래∼조항을 잇는 3번, 율전∼생둔을 잇는 13번, 광원∼방동을 잇는 15번 군도가 개설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분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창촌(蒼村) · 광원(廣院) · 명개(明開) · 율전(栗田) · 자운(紫雲) · 방내(坊內) 등 6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46.50㎢, 1,017세대, 인구 2,390명으로 남자 1,217명, 여자 1,173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관리이다.
본래부터 홍천군 지역으로 물걸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1910년에 지금의 소재지로 옮겨졌다.
북쪽에 가마봉(925m) · 백암산(白巖山, 1,099m) · 매봉(865m) · 백우산(백우산, 895m) 등 높은 산이 솟아 있다. 중앙부에는 내촌천이 여러 지류와 합쳐지면서 서류하여 유역시 좁은 하안단구가 형성되어 주요한 생활무대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하천유역에서 벼농사가 행해진다. 옥수수 · 메밀 · 팥 등의 잡곡과 고추 · 오이 · 느타리버섯 등의 생산도 많다.
광업은 일제 강점기에는 금이 많이 산출되었으나 지금은 쇠퇴하였다. 화상대리에 있는 물골안 유원지는 피서지로 유명하다.
교통은 철정(哲亭)과 인제군 현리를 잇는 451번 지방도와 물걸∼서석면 수하리를 잇는 5번과 서석면의 생곡∼두촌면의 원동을 잇는 11번 군도가 완전 포장되어 점차 편리해지고 있다. 문화유적은 물걸리에 석조여래좌상 ·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불좌대 및 광배 · 삼층석탑 · 사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도관(道寬) · 물걸(物傑) · 와야(瓦野) · 서곡(瑞谷) · 답풍(踏楓) · 화상대(和尙垈) · 문현(文峴) · 광암(廣巖) 등 8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49.64㎢, 1,465세대, 인구 3,635명으로 남자 1,862명, 여자 1,773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속초리이다.
본래 홍천군 지역으로 영귀미면(詠歸美面)이라 하다가 1917년에 홍천읍의 동쪽이 된다 하여 동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북부에 공작산(887m), 동부와 남부에 발교산(髮校山, 994m) · 태의산(675m) · 오음산 등이 솟아 있어 산지를 이룬다. 북서부에는 홍천강의 지류인 덕치천 · 성전천 · 개운천 등이 흘러, 유역인 속초리 · 성수리 · 후동리 · 노천리 등지에 규모는 작지만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가 행해지며, 보리 · 잎담배 · 인삼의 생산도 많다. 잣 · 송이버섯 등도 생산되며, 최근에는 홉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덕치리의 수타사관광지(壽陀寺觀光地)와 관광농원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교통은 홍천∼서석면 풍암리를 잇는 444번 지방도가 면의 중앙을 관통하고, 노일리와 횡성군 공근면을 잇는 406번 지방도가 완전 포장되었다. 노천∼주음치를 잇는 6번과 12번 군도도 부분적으로 포장되어 점차 편리해 지고 있다. 문화유적은 덕치리에 홍천수타사월인석보 · 홍천수타사대적광전 · 홍천수타사삼층석탑 · 홍천수타사홍우당부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속초(束草) · 신봉(新峰) · 덕치(德峙) · 성수(城壽) · 삼현(三峴) · 방량(方良) · 월운(月雲) · 후동(後洞) · 개운(開運) · 노천(1)(魯川) · 좌운(坐運) · 노천(2)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40.51㎢, 1,113세대, 인구 2,568명으로 남자 1,290명, 여자 1,27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자은리이다.
본래 홍천군 지역으로 홍천의 북동부 끝에 있다 하여 말촌면(末村面)이라 하다가 두촌면으로 개칭되었다.
면내에 가마봉(925m) · 매봉(800m) · 가리산(加里山, 1,051m)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장남천(長南川)이 중앙을 남류하여 유역에 약간의 평지가 있을 뿐이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장남천 유역에서 옥수수를 비롯한 잡곡이 많이 생산되며, 최근 홉 재배가 증가하고 있고, 잣과 약초의 생산도 많다. 특히 괘석리지구는 고랭지채소와 감자가 유명하다.
광업은 자은리에 남한 최대의 매장량을 가진 철광산이 있어 앞으로의 개발이 기대된다. 천현리에는 오대산 가구특산단지, 역내리에는 용소계곡(龍沼溪谷), 철정리에는 북창농촌관광휴양원, 가리산에 가리산 자연휴양림 등이 조성되어 있다.
교통은 양평∼양양을 잇는 44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고, 철정∼현리를 잇는 451번 지방도가 혈정에서 시작한다. 원동∼생곡을 잇는 11번 군도가 있을 뿐으로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괘석리에 삼층석탑, 장남리에 삼층석탑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자은(自隱) · 철정(哲亭) · 역내(驛內) · 천현(泉峴) · 원동(遠洞) · 장남(長南) · 괘석(掛石)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46.42㎢, 1,755세대, 인구 4,220명으로 남자 2,222명, 여자 1,99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화계리이다.
본래 홍천군 지역으로 홍천읍의 북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북방면이라 하다가 한때 화계면(花溪面)으로, 그 뒤 다시 북방면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춘성군 동산면 북방리가 편입되었다.
북서쪽에는 대룡산(大龍山, 899m) · 연엽산(蓮葉山, 850m) 등 높은 산이 솟아 있다. 남쪽에는 망령산(望嶺山, 396m) · 불금봉(499m) · 금확산(金確山, 655m)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성동천이 남류하여 하화계리에서 홍천강에 합류하고, 홍천강이 남부를 서쪽으로 흘러 유역에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상화계리, 중화계리 및 하화계리 일대에는 대규모의 산록 완사면과 저위 구릉지가 형성되어 주요 생활무대가 되고 있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하천유역에서 벼농사가 행해지며, 잣 · 옥수수 · 약초 · 산채 · 고추 등이 많이 생산된다. 하화계리에는 중석기유적지, 매곡리에는 홍천온천, 굴지리에는 성동리에는 강재구공원이 있다.
교통은 춘천∼대구를 잇는 중앙고속국도 일부 구간이 면의 서부를 지난다. 상화계∼홍천읍 신장대리를 잇는 2번, 서면 마곡∼부사원을 잇는 4번, 화동∼화촌면의 풍천리를 잇는 8변 및 서면 팔봉(팔봉)∼역전평을 잇는 14번 군도가 개설되었다. 또한 포장도 많이 이루어져 종전보다 편리해 졌다. 문화유적은 장학리에 용수사지, 역전평리에 홍천군변유영정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4개 교)가 있다.
상화계(上花溪) · 화동(花洞) · 중화계(中花溪) · 성동(城洞) · 북방(北方) · 능평(菱坪) · 부사원(府司院) · 도사곡(都沙谷) · 소매곡(疎梅谷) · 하화계(下花溪) · 역전평(驛田坪) · 본궁(本宮) · 원소(遠所) · 구만(九巒) · 노일(魯日) · 장항(獐項) · 굴지(屈只) · 전치곡(田峙谷) 등 18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3.37㎢, 1,624세대, 인구 3,387명으로 남자 1,780명, 여자 1,607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반곡리이다.
본래 홍천군 지역으로 감물악면(甘勿嶽面)이라 하다가 1917년에 서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남쪽에는 매봉산 · 나산(羅山, 628m) · 장락산 등이 솟아 있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 경계를 따라 홍천강이 서류하여 유역인 모곡리 일대에는 비교적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하천유역의 평야지대에서 벼농사가 행해지며, 잎담배 · 마늘 생산이 많고 양잠도 성하다. 마곡리는 청평호(淸平湖)와 홍천강의 합류지점으로 내수면 어업의 중심지이다. 마곡리에는 마곡유원지, 모곡리에는 홍천관광농원 · 밤벌유원지 · 서면특산단지(식용유), 팔봉리에는 팔봉산관광지와 대명(大明) 홍천스키장 등이 개발되어 있다.
교통은 청평∼횡성을 잇는 494번 지방도가 완전 포장되었다. 대곡∼두미간의 1번, 마곡∼북방면 부사원간의 4번, 대곡∼어유포간의 9변, 팔봉∼북방면 역전평간의 14번 등의 군도가 개설 · 포장되어 종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문화유적은 어유포리에 노동서원, 모곡리에 남궁억묘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반곡(盤谷) · 어유포(魚遊浦) · 팔봉(八峰) · 굴업(屈業) · 대곡(垈谷) · 두미(斗尾) · 모곡(牟谷) · 중방대(中坊垈) · 길곡(吉谷) · 동막(東幕) · 마곡(馬谷) · 개야(開野)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25.27㎢, 1,586세대, 인구 4,126명으로 남자 2,018명, 여자 2,10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풍암리이다.
본래 홍천군 지역으로 조선 말기에 서석면이 되었다.
운무산(980m) · 수리봉(960m) · 응봉산(1,103m) · 아미산(峨嵋山, 961m) · 동막산(東幕山, 731m) 등이 솟아 있어 산지가 많다. 내촌천이 지류인 청량천과 합쳐지면서 중앙을 흘러, 유역인 풍암리 · 상군두리 · 하군두리에 규모는 작으나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군내에서 벼농사가 가장 성하며, 보리 · 옥수수 · 영지 · 인삼 · 시설산채류 등이 많이 생산되고, 양봉도 성하다. 검산리에는 시석특산단지(산채가공), 서봉사(瑞峰寺)유원지 및 모둘자리 관광농원이 있다.
교통은 춘천∼양양을 잇는 56번 국도와 횡성∼풍암을 잇는 441번 및 홍천∼상남을 잇는 444번 지방도가 완전 포장되어 서로 교차한다. 5번과 11번 군도가 수아리와 어촌리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 비교적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풍암리에 김학균가옥과 동학혁명군전적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풍암(豊巖) · 검산(儉山) · 생곡(笙谷) · 상군두(上軍杜) · 하군두(下軍杜) · 청량(淸涼) · 어론(魚論) · 수하(水下) 등 8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210.79㎢, 2,039세대, 인구 4,965명으로 남자 2,597명, 여자 2,36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산리이다.
본래 홍천군 지역으로 화촌면이었으며,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성군 동산면 풍천리가 편입되었다. 구성포리에 있던 면 소재지는 6 · 25사변 때 외삼포리에 임시로 옮겨졌다가 1954년 현위치로 옮겨졌다. 1995년북방면 성동리 일부가 구성포리에 편입되었다.
응봉산 · 곡작산 · 가리산 등이 솟아 있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홍천강이 지류인 풍천리천 · 군업천 · 성산천 등이 합쳐지면서 면의 중앙을 남서쪽으로 흘러 유역에 하안단구와 하곡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가 중심이며, 잣을 비롯한 약용작물, 산채 등의 생산이 많다. 구성포리에는 홉재배단지가 있어 홉생산이 증가하고 있다. 송정리에는 목각특산단지, 군업리에는 군업특산단지(엿가공), 야시대리에는 도자기특산단지 등이 있다.
교통은 양평∼양양을 잇는 56번 국도가 구성포리에서 교차하고 있어 편리하다. 한편 내삼포∼야시대를 잇는 10번 군도가 개설되어 더욱 편리해 졌다. 문화유적은 군업리에 아양정 · 화성단 · 지석묘군, 외포리에 완산이씨열려각이 있다. 군업리에 원주이씨(原州李氏), 장평리에 청주사씨(淸州史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성산(城山) · 송정(松亭) · 굴운(屈雲) · 구성포(九城浦) · 풍천(楓川) · 외삼포(外三浦) · 내삼포(內三浦) · 야시대(也是垈) · 주음치(酒飮峙) · 군업(郡業) · 장평(長坪) 둥 11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