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시지(是之), 호는 부훤당(負暄堂). 증좌찬성 황희성(黃希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찬성 황사우(黃士祐)이고, 아버지는 직장 황응규(黃應奎)이며, 어머니는 의빈부도사 이수려(李壽旅)의 딸이다. 부제학 황섬(黃暹)의 동생이다.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4년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594년 병조정랑을 거쳐 지평, 이듬해 문례관(問禮官)과 응교를 지냈다. 1596년 시강원보덕을 거쳐 사성을 지내고, 뒤에 청송부사가 되어서는 선정을 베풀었다.
1601년 사재감정이 되었다가 1604년 재차 보덕을 거쳐, 직강·집의·직제학·동부승지를 지내고, 이듬해 병조참의를 거쳐 승지가 되었다. 1607년 판결사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인 죽계(竹溪)로 돌아가서 풍월(風月)을 벗삼고 10년 동안 은거하면서 광해군의 난정(亂政)에 항거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다시 부름을 받아 삼척부사가 되었다가 곧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저서로 『조천록(朝天錄)』·『부훤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