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익취(翼就), 호는 지소(芝所). 황원(黃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대수(黃大受)이고, 아버지는 황척(黃惕)이며, 어머니는 강백룡(姜伯龍)의 딸이다. 큰아버지 황신(黃愼)에게 입양되었다. 조수륜(趙守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음보로 운봉현감·전주판관·임천군수 등을 역임하고,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세자시강원문학을 거쳐 1636년 장령이 되었다.
이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독전어사(督戰御史)로 전공을 세웠고, 척화를 적극 주장하였다. 난이 끝난 뒤 호종의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진주목사에 제수되었다.
1638년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명나라를 도와 청나라를 치고자 최효일(崔孝一) 등과 모의하다가 그 사실이 발각되어 1641년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었다.
강화충렬사(忠烈祠), 부여의열사(義烈祠), 운봉용암서원(龍巖書院), 의주백마산성사(白馬山城祠)에 배향되었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