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왕위계승자인 세자의 교육과 호위를 위해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등을 설치하였다.
1894년(고종 31) 6월에 행정제도 개편을 논의할 때 세자와 관련된 익위(翊衛)·강서(講書)·위종(衛從) 등의 업무를 시강원으로 통합하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7월에 확정된 직제 개편에 따르면, 익위사·강서원·보양청(輔養廳)·위종사(衛從司) 등 세자 관련부서를 궁내부(宮內府) 소속의 시강원 관할로 편제하였다.
이때 시강원 소속 관원인 사(師)·이사(貳師)·찬선·보덕·필선·진선(進善)·문학·설서·자의(諮議)는 각각 1인으로, 빈객(賓客)은 2인으로 감축되었다.
세자 관련 행정업무의 통합 작업은 1895년 왕태자궁의 설치로 실현되었다. 이듬해 왕태자궁은 시강원으로 개칭되어 세자 및 왕자 등에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였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왕태자를 황태자로 고쳐부르게 되자 1905년에는 시강원을 황태자궁시강원으로 개칭하였다.
1907년에 황태자궁시강원은 동궁(東宮)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 관원을 줄여 대부(大夫) 1인은 칙임관으로, 대부보(大夫補) 1인, 시종 4인, 시강 2인은 주임관으로, 주사 2인은 판임관으로 각각 임명하였다.
황태자궁시강원의 주요 업무는 세자의 명령을 출납하고, 보도(輔導)·시강(侍講) 및 배종(陪從)을 담당하였다. 관원은 칙임관(勅任官)·주임관(奏任官)·판임관(判任官)으로 구성되었다. 일강관(日講官) 2인은 홍문관태학사와 규장각학사가 겸임하였다.
첨사(詹事) 1인과 부첨사 1인은 칙임관으로, 서연관(書筵官)은 유현(儒賢) 중에서 적임자, 시독(侍讀) 4인과 시종관(侍從官) 8인은 주임관으로, 주사(主事) 2인은 판임관으로 각각 임명하였다.
시강원의 강의 교재로는 조선 전기에는 『소학』·『효경』·『통감(通鑑)』·『강목(綱目)』·『사략(史略)』·『명신언행록』·『대학연의(大學衍義)』·『대학혹문(大學或問)』·『심경(心經)』·『근사록』 및 사서삼경이 이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 관련 서적과 국내에서 편찬된 『동몽선습』·『국조보감』 등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