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영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집으로, 조선 세종 때의 문신 황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그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영당을 비롯하여 영모재(影慕齋)·반구정(伴鷗亭)·앙지대(仰止臺) 등이 세워져 있다.
이 영당은 1455년(세조 1)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의 건물은 1950년 6·25 때 불탄 것을 그해에 복원한 것이다. 영당 내부에는 약 100여년 전에 모사되었다고 하는 황희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돌담장을 둘러 구획한 경내의 초입은 솟을삼문이 서 있고, 뜰을 지나면 화강석재의 장대석을 2단으로 짠 기단 위에 영당이 서 있는데 처마 밑에는 선생의 호를 딴 ‘厖村先生影堂(방촌선생영당)’이란 당호가 행서로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 앞쪽은 기둥만을 나열한 트인 공간이며, 후면에는 문짝을 달고 내실을 마련하여 그 안에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건물의 외부에는 단청이 장식되고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그리고 영당의 왼편에는 황희의 15대 외손인 맹현(孟鉉)의 사당이 있으며, 오른편에는 이곳을 방문하던 빈객을 영접하여 침식을 제공하던 영모재가 있다. 건너편에는 황희가 벼슬을 떠나 여생을 보내던 반구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역시 6·25 때 불탄 것을 후손들이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