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 건평 약 88㎡의 우진각지붕(네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건물.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광해군이 경희궁을 창건할 때 대궐문으로 세운 건물로 궁성의 동쪽에 동향으로 배치하였다. 다른 궁궐의 정문이 2층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흥화문은 1층으로 지어졌는데 그것은 경희궁이 이궁(離宮)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경희궁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1915년 남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년박문사(博文寺)의 절문으로 이용되었다. 그 뒤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변형되거나 파손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건물의 형상을 토대로 하여 살펴보면, 평면은 4개의 기둥을 4줄로 배열하되 중앙칸의 고주(高柱) 사이에 중앙문과 협문을 두었는데, 문인방 위에는 전방(箭枋)을 설치하였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고, 그 위에 외이출목(外二出目) · 내이출목(內二出目)으로 공포(栱包)를 구성하였다. 내포(內包)의 살미는 교두형이며 기둥 바로 위의 공포는 보머리모양으로 처리되어 있다.
건물 내부의 가구(架構)는 고주와 고주 사이에 걸친 보, 고주 위쪽에 놓은 마룻보, 마룻보 위에 대공을 놓고 그 위에 얹은 마룻도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장은 가운데칸은 연등천장, 좌우 협간(挾間)은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다. 지붕마루에는 취두 · 용두 · 잡상 등이 장식되어 있다. 현판글씨는 이신(李紳)이 쓴 것이라고 전하는데 현판의 소재는 알 수 없다.
경희궁에 있던 100여채의 건물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은 이 흥화문과 정전이었던 숭정전(崇政殿) · 황학정 등 3채뿐이어서, 경희궁의 건축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흥화문의 원래 위치는 구세군회관 빌딩이 있는 곳이며, 1988년 경희궁복원계획의 일환으로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