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사업은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에 의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1997년 8월 초기현장공사를, 1999년 12월 경수로 공급을 위한 주계약이 체결되었다. 2002년 10월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고비를 맞게 되었다.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강경입장이 변하지 않자 2006년 경수로 사업은 종료되었다. 경수로 사업은 실패했지만, 남북 경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경수로 사업은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에 따라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1,000㎿e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경수로 사업은 1995년 3월 한국 · 미국 · 일본 3국에 의해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에 의해 시행되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선언은 한반도에 북핵위기를 대두시켰다.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대화를 위해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카터(Jimmy Carter)가 1994년 6월 방북하였고, 이후 북 · 미 대화를 거쳐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핵개발 포기와 경수로 제공 등의 내용을 담은 기본합의문이 체결되었다.
경수로 사업은 1995년 3월 9일 경수로 및 중유를 북한에 제공하기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1995년 12월 북한과 경수로 공급협정을 체결한 후 1996년 3월 주계약자로 한국전력공사를 지정하였다.
이후 1997년 8월 초기현장공사가 착공되었고 1999년 12월 경수로 공급을 위한 주계약이 체결되었다. 2000년 2월 주계약이 발효되고 북한이 2001년 9월 건설허가증을 발급함에 따라 경수로 건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경수로 사업은 2002년 10월 미국이 북한의 주1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중대고비를 맞게 되었다. 북핵문제가 재발된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중유공급을 중단하며 경수로 사업 등 여타 활동도 검토해 나갈 것임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2003년 4월 미국 · 중국 · 북한 간의 「3자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진전이 없고, 2003년 8월 개최된 「6자회담」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남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2003년 12월 1일부터 1년간 경수로사업을 일시 중단하기로 발표하였다.
이후 경수로 사업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사업 중단조치를 2004년 12월 1일부터 1년간 더 연장하기로 함으로써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2년간 중단되었다. 경수로 사업 중단 이후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종전의 강경입장을 그대로 고수함에 따라 결국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2006년 5월 31일 경수로 사업의 종료를 결정하였다.
경수로 사업은 1995년 12월 경수로 공급협정이 체결된 후 10년 6개월, 그리고 1997년 8월 착공식 이후 8년 10개월 만에 미완의 상태로 종료하였다. 경수로 사업은 1997년 8월 착공 이후 2003년 11월까지 시공 21.6%, 종합설계 62.3%, 각종 기자재 제작 · 구매 43.2% 등을 포함하여 종합공정율 약 34.5%의 진척도를 보였다.
경수로 사업에 투입된 사업비는 2006년 12월말까지 약 15억 7,500만 달러로, 남한이 11억 4,600만 달러, 일본이 4억 1,100만 달러, 유럽연합이 1,800만 달러를 분담하였으며 미국은 사업비는 부담하지 않는 대신 북한에 중유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