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에 소재하는 장흥 위씨 종택(宗宅)에 전래하는「사강회문서첩(社講會文書帖)」과「위문가첩(魏門歌帖)」 2종의 첩(帖)을 통칭하는 것으로, 위백규(魏伯珪, 1727~1798)와 위세보(魏世寶, 1669∼1707) 등의 시조와 가사를 기록한 노래첩(帖)이다.
종래 「삼족당가첩(三足堂歌帖)」으로 가칭(假稱)되던 위씨 문중의 전래 가첩을 「위문가첩」(세로 17㎝, 가로 20.5㎝)이라 하며, 이와 별도로 21개의 사강회문서를 모아놓은 것을「사강회문서첩」이라 한다.
이들 ‘존재가첩’은 국문학계에 위세보의 가사 「금당별곡」과 위백규의 가사 「자회가」 및 시조 「농가」(9장), 이상계의 「초당곡」과 「인일가」, 박이화의 「만고가」, 노명선의「천풍가」, 작자미상의 「합강정선유가」와 「권학가」등이 수록된 「위문가첩」(가칭 삼족당가첩)이 먼저 보고된 까닭에 명칭에 혼란이 있다.
「사강회문서첩」에는 「농규(農規)」 다음에 위백규의 「농가」 9장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둘을 가리켜 ‘존재가첩’이라 통칭하기도 하나, 적절한 용어는 아니다.
따라서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의 「자회가」와 「농가」 9장을 대상으로 할 때는 두 첩을 모두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여러 가사를 대상으로 할 때는 「가칭 삼족당가첩」(곧, 「위문가첩」)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백규의 「농가」 9장은 농부화의 추세 속에 놓인 향촌사족층인 서생(書生)이 자영농(自營農)의 자리로 이전해가는 단계를 전형적으로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위백규의 조부 위세보가 지었다는「금당별곡」은 남도 섬(완도)에 대한 유람가사인데, 작자 구명이 명료하지 못한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