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 중 비교적 최근에 그 존재가 알려진 것으로 초간본 권3·권4(서울역사박물관 소장)와 권8~권10(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이 있는데, 본서는 후자의 3권 3책으로 2006년 4월 28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들은 모두 일부 낙장과 훼손이 있고, 후대에 권별로 분책되고 개장(改裝)되었다. 인면(印面)의 상태로 보아 초쇄본이 아닌 후대의 인출본, 즉 후쇄본임을 알 수 있다.
『용비어천가』는 1447년(세종 29) 목판본 10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이때 새겨진 책판으로 인출된 초간본은 현전하는 것이 매우 드물다.
먼저, 서울대학교 규장각 가람문고 소장의 1책(권1·권2)과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소장의 2책(권1·권2, 권7·권8)이 초간 초쇄본 또는 그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규장각 도서에는 초간본 책판을 일부 보수하여 후대에 인출한 후쇄본 2질이 소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1질은 1책(권5·권6)을 결한 낙질본이다.
그리고 본서인 계명대학교 소장의 『용비어천가』 3책(권8~권10)은 본문에 약간의 얼룩과 훼손이 있으나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후대에 책의 상단과 하단을 조금 잘라내고 배접 개장하였는데, 원장(原裝)과는 다르게 6침안(針眼)으로 장정(裝訂)하여 놓았다. 권10의 말미에 붙어 있어야 할 발문(跋文) 2장이 없는 점도 아쉽다.
이와 비슷한 계통의 책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 소장의 『용비어천가』 2책(권9·권10)이 있다. 이들 판본은 권10의 장차(章次) 표시에서 제107~제121장 부분이 인출시 매목(埋木)에 의해 잘못 수정되었는데, 이 수정은 규장각본, 계명대학교본, 컬럼비아대학본 등의 후쇄본도 공통된다.
그러나 권9의 본문 주석 ‘이생(二甥)’(56b 2행) 이하의 내용 일부를 삭제해 버린〔削去〕 것 등은 계명대학교본과 규장각본이 일치하나, 컬럼비아대학본은 이 내용이 인쇄되어 있고 변란(邊欄)이나 자획(字畵)의 마모도 덜한 편이므로, 계명대학교본과 규장각본이 컬럼비아대학본보다 시기적으로 더 늦게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용지면에서는 계첩지(繼貼紙: 이은 종이)를 사용한 규장각본보다 온종이를 사용한 계명대학교본이 더 우수하다.
『용비어천가』 권8~권10은 권수로는 전체의 ⅓에 못 미치지만, 수록된 한글 가사는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본문에는 조선 왕조의 건국과정을 읊은 노래 가사와 주석이 실려 있는데, 권8에는 총 19장(5977장), 권9에는 총 20장(7897장), 권10에는 총 28장(98~125장), 도합 67장의 가사와 그에 대한 주석이 각각 실려 있다.
초간 초쇄본 완질이 전하지 않는 현실에서 비록 고친 곳이〔變改〕 약간 있지만, 이 후쇄본이 가지는 가치는 매우 높다.